Northern Europe

베를린5(Berlin)

박희욱 2013. 8. 10. 17:08

 

 

 

 

 

 

 

 

 

 

 

 

 

 

 

 

 

 

 

베를린 대성당

 

 

 

 

 

 

 

체크포인트찰리

 

오늘의 마지막 관광으로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에 가보았다. 별다른 관광거리가 아닐 것으로 여겨졌으나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국민으로서 가보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역시 관광거리는 못 되었다. 그래도 매년 6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간다는데 독일 자국민들이이지 않을까 한다. 2차대전의 패전으로 독일이 분할 점령되었고, 베를린은 구소련이 먼저 점령했으나 연합국의 강력한 요구로 어쩔 수 없이 수도 베를린도 동서로 분할되었다고 한다. 그후 동베를린 사람들, 그 중에서도 전문직이나 엔지니어들이 대거 서베를린으로 넘어가자 위기를 느낀 동독정부에서 탈출을 막기위한 장벽을 쌓았고, 그때 A,B,C,D 4개의 검문소를 설치하였는데 그 중에서 유일하게 외국인들의 통행이 가능했던 C 검문소를 체크포인트 찰리라 불렀다.

동서 베를린의 장벽이 무너진 것이 1989년이었고 내가 독일을 방문한 것은 90년도였다. 그때 대학생인 듯한 어느 여학생에게 독일 통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외의 대답을 해서 내가 놀랐던 기억이 난다. 지금의 체크포인트에는 싸늘한 눈초리의 군인은 없어지고 후줄그레한 군복을 입은 아르바이트 학생인 듯한 사람이 두어명 서서 기념촬영의 댓가로 푼돈을 받고 있는 모습이 너무 초라하면서도 썰렁한 분위기를 연출하고있어서 나를 실망시킨다. 관광객들이 사진기를 들이대면 짜증을 낸다. 아마도 돈을 내고 찍어라는 것 같다. 주변에는 박물관과 가건물 비슷한 전시실이 있어서 많은 사진과 설명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나그네가 공을 들여서 그것을 일일이 읽어볼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동서베를린 장벽도 무너지고, 철의 장벽도 녹아버리고, 죽의 장벽도 열렸는데 우리의 남북간의 휴전선은 무슨 장벽이길레 이렇게도 견고해서 무너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가! 누구나 그렇겠지만 해외에서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거의 매번 'North Korea or South Korea?'라고 되묻는다. 그러면 짜증이 나서 북한 사람을 본 적이 있느냐고 되묻고는 북한은 국가가 아니고라 일종의 감옥과 같아서 해외에는 나오지 못한다고 말해주곤 한다. 어떤 때는 아직도 통일을 이루지 못한 못난 민족으로 볼까봐 우리는 동서독과는 달리 쌍방간에 심각한 전쟁을 치루었기 때문에 그것이 빠른 시일내의 통일에 장애가 된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곤 한다.

 

학자들 중에는 6.25전쟁을 통일전쟁이라고 명명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역시 학자답게 관점이 매우 좁은 관경의 시야로 남침을 보는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휴전선의 땅굴도 통일을 위한 것으로 보일까, 핵개발도 통일을 위한 것이라고 우기지나 않을까? 학자들 중에는 분석능력은 뛰어나지만 사물을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하는 능력은 떨어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식자우환이라는 말도 나왔는지 모르겠다. 문필가 이외수가 대학은 거대한 지식의 영안실이라고 표현한 것은 충분한 타당성이 있다.

김일성이가 통일을 하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켰으니 그것은 통일전쟁이라는 논리인가 보다. 그들이 말하는 김일성의 통일전쟁 때문에 아직도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그들의 관점에 따른다면 모든 전쟁은 통일전쟁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김일성이가 진정으로 통일을 원했다면 근 50년에 가까운 장구한 세월동안의 기회가 있었다. 그것도 아무런 전쟁 없이 아주 쉽고도 평화스런 방법으로. 통일은 고사하고 거지 같은 수용소 소장 자리를 아들, 손자에게까지 물려준 자가 김일성이지 않은가.

 

예전에 중국 장강삼협을 구경하고나서 황산으로 가기 위하여 야간열차를 이용한 적이 있다. 그때 상해대학교 대학원생과 동승했는데, 그 학생은 미국의 개입 때문에 한반도가 통일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중국이 한반도의 통일을 원할 이유가 전혀 없다. 김일성이가 통일을 원했다면 남한이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갔을 때 중공군이 개입을 저지해야 했는데 과연 그렇게 한 것인가? 6.25 동란을 남한의 북침으로 끝까지 우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통일전쟁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적화통일전쟁이기 때문인가.

남침을 통일전쟁으로 보는 자들이 아직도 밥을 먹고 있을까. 먹고 있다면 숟가락을 빼앗고 북쪽으로 보내 주고 싶다. 좌파들은 사물의 원인을 따진다. 원인은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는데로 만들 수 있다. 반대로 결과는 외면하려 든다. 결과는 자신들이 원하는데로 만들 수 없다. 또 그들은 과거를 따지기를 즐겨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므로 얼마든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상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실재를 볼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고 이상을 사랑한다. 그러나 이상은 솜사탕과 같아서 달콤하기는 하나 인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질병의 원인이 된다. 이상은 이상한 상상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늘을 보면서 상상속에서 걷는다면 우물속에 빠진다. 우리 속담에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는 말이 있다. 나는 속담에 지혜가 가득차 있다는 것을 볼 때면 신기할 정도다. 6.25 전쟁은 참혹, 참상, 참담, 비참과 같은 참자 돌림만 남겼고, 아직도 그 고통을 격고 있고, 또 그 고통이 기억에 생생한 수많은 사람이 숨쉬고 있는 이 시대에 그것을 통일전쟁이라고 한다면 그는 밥숟가락을 들 자격이 없다. 6.25 동란으로 인한 사상자가 500만이라 하는데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아이고, 진수야!"

"예"

"니가 우짜다가 그래 댔노?!"

"전쟁하다가 이래 안 댔심니꺼. 수루탄 쪼가리에 맞았심더."

"수루탄 쪼가리에?!"

"예."

"음....."

"얼른 낫지 않고 막 썩어들어가서 군의관이 짤라버립디더. 병원에서예."

"......."

"아부지!"

"와?"

"이래 가지고 나 우째 살까 싶습니더."

"..... 우째 살긴 우째 살아. 목숨만 붙어 있으면 다 사는 기다. 그런 소리 하지 마라!"

"....."

 

 하근찬, [수난 이대] 중에서

 

 

 

내가 어릴 때 거의 매일 아침이면 거지가 깡통을 팔뚝에 걸고서 우리집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들 중에는 많은 이들이 팔이나 다리나 손목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제대한 상이군인인 것이다. 할머니는 가끔 어린 나에게 밥을 갖다 주라하고 했다. 두려웠던 나는 얼른 밥통에 몇 숟가락의 밥을 부어주고서는 급히 돌아섰다. 내가 듣기로는 그들이 사회에서 행패를 많이 부리기도 한 모양이다. 깡통에 떨어지는 식은 밥덩이를 보는 기분이 어떠했을까! 그 울분을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보리밥 한 숟가락도 줄 수있는 여력이 되는 집도 얼마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에 1인당 국민소득 $72인 나라에서 그들에게 어떤 보상을 해 줄 수 있었을 것인가. 그때는 수출품 1위가 사람 머리카락이었다. 해외로 수출할 것이 그것 밖에 무엇이 있었을 것인가. 한국의 발전은 그야말로 잿더미 위에 핀 장미이다.

 

 

 

 

 

 

 

 

 

 

 

 

 

 

 

 

 

 

 

 

 

 

 

 

 

 

 

 

 

 

체크포인트 찰리의 실망스런 마음을 추스리고 화장실을 이용할 겸해서 옆에 있는 맥도날드집에 들어갔는데 형편없는 햄버거와 콜라 세트가 9유로다. 게다가 화장실조차도 유로이다. 이래 저래 바가지를 쓴 기분이다. 그런데 베를린에는 유로 화장실조차도 좀처럼 눈에 띄지 않으므로 급한 경우는 망신당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

 

 

 

 

 

 

 

 

 

포츠담 광장

 

체크포인트 찰리를 떠나서 포츠담 광장을 거쳐서 베를린 필하머니로 가보았다. 포츠담 광장에는 최신 건축물들이 가득하다. 대표적인 것이 다임러 벤츠사와 일본 소니사가 각각 2조4천억원과 1조원을 투자했다는 복합상가 건축물이다. 그러나 내게는 아무런 흥미가 없어서 별 볼일 없이 그냥 스쳐 지나왔다.

 

 

 

 

 

베를린 필하머니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하머니는 수년전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콘스트홀이나 보려고 들렸는데 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가가 보니 싼값의 입석권을 팔고 있었는데, 이게 웬 떡이냐 싶어서 나도 줄을 섰다. 입장을 하고 보니 허럼한 배낭족 복장에 운동화를 신고 있는 사람은 나 밖에 보이지 않고, 한결같이 검은색 수트에 동부인한 주로 70대로 보이는 청중이었다. 다만 오케스트라 뒷쪽의 한 구역에는 캐쥬얼 차림의 청중이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아마도 음악전공 학생들을 배려한 것 같았다. 역시 베를린 필의 연주는 예민하지 못한 내 귀에도 섬세하고도 세밀한 흐트러짐이 없는 연주가 인상적이었고,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 조금이라도 본전을 뽑으려는 듯이 청중들이 줄기차게 박수를 쳐도 끝내 연주자들은 되돌아 나오지 않았다.

 

 

 

 

 

 

 

 

 

 

 

 

 

 

 

 

 

 

 

 

 

 

 

 

 

 

 

 

 

 

 

 

 

 

 

 

 

 

 

 

 

 

 

 

 

표트르 일행이 떠난 오늘은 독방이다. 옷가지 몇개를 빨고나서 8시 쯤에 일찍 취침하였다.

 

 

5월 6일(월) 맑음

폴란드 팀과 이틀을 지낸 다음 어제는 홀로 지냈다. 매일 이렇게 독방이면 좋으련만. 오늘도 아침식사는 꾸역꾸역 많이 먹었다. 귀국시 아내에게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 눈치가 아니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많이 먹는다고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먹을 때는 개조차 건드리지 않는다고 했지 않은가.

첫 배낭여행 때는 1달간 여행을 하고서도 여행하는 동안 사회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변하지나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으나 지금은 그런 것이 전혀 없다. 혐오스러웠던 정치인들과 혐오스러웠던 민중과 혐오스러웠던 사회와 결별한지가 오래다. 신문구독과 TV 3사의 시청을 그만둔지가 15년이 넘었다. 인류문명 8천년 동안 개인의 행복 차원에서 본다면 사회는 전혀 발전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사회의 발전으로 인하여 내가 좀 더 행복해지겠다는 생각을 헌신짝 버리듯이 버리고 말았다. 내가 지금 여행하고 있는 북유럽 복지국가의 사회도 예외가 아니라고 본다. 포도알이 변하지 않는데 어찌하여 포도송이가 변할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인간이 변하지 않는데 어떻게 사회가 변하겠는가. 사회를 개조할 수 있다고 믿었던 러시아, 중국 등이 결국 옛날의 모습으로 되돌아 갔다. 내 삶이 기껏해야 100년도 되지 않는데 나의 행북을 어찌 사회의 전향적 발전을 기대할 수있겠는가. 나는 기대 못한다. 정치인들이란 언제나 사회의 개선을 미끼로 삶아서 어리석은 민중을 낚아 올려 자신들의 망태에 집어넣는 낚시꾼 같은 자들이 아니고 무엇인가.

 

자꾸 귀국할 날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안되겠다. 머리속에서 시간관념을 지워버려야겠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여행이 편할 것 같지가 않다. 사실 머리속에서 시간관념만 완전히 제거한다면 이 땅이 바로 천국이다. 나는 하기 싫은 일을 해야할 때는 머리 속에서 시간관념을 지워버리려고 한다. 인도를 여행했을 때 타지마할의 정원에는 분수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타지마할 아래쪽으로 내려가 보니 아무나 강가에서 당나귀가 꾸역꾸역 끊임없이 수차를 돌려서 물을 올리는 것이었다. 그 당나귀에게는 시간관념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한 것이지 그것은 인내심이 많기 때문이 아니다. 당나귀에게는 마음이란 것이 없고, 따라서 인내심이란 것이 있을 리가 없다. 시간을 버린다는 것은 곧 욕망을 버린다는 것이며, 욕망을 버린다는 것이 곧 시간을 버리는 것이다. 알고보면 시간과 욕망은 동의어나 마찬가지다.

 

 

 

 

호스텔 로비

 

 

 

 

호스텔 식당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여행물품의 준비를 완료해야 한다.

그래서 관광은 그만두고 지하철 U9을 타고서 Rathhaus Steglitz에 있는 베를린 최대의 웃도어샾 Globtrotter에 갔다.

승차권 발매기 앞에서 동전이 없어서 곤란해 하고 있으니까 지나가던 현지인이 자기가 사주겠단다.

2.4유로는 적지 않은 돈인데 선듯 친절을 베푼다. 5유로 지폐를 내밀어도 사양한다. 독일 사람들 매너가 좋다. ㅋ

승차권 발매기는 신용카드도 사용할 수 있는 모양인데 작동법을 잘 모르겠다.

 

 

Globtrotter를 찾아가는 도시철도

이 양반 자전거 핸들바도 나와 같은 제품이다.

우리도 출퇴근시간 이외에는 지하철에 잔차를 실을 수 있으면 좋겠다.

 

 

 

Globtrotter

 

이곳도 마치 대규모 마트를 방불케 하는 엄청난 크기의 샵이어서 없는 제품이 없다.

수많은 샾을 뒤져도 보이지 않았던 부탄가스도 없을 수가 없다.

소형 등산용 부탄가스 4개,속건성 수건, 위스키 병, 반찬통 등과 함께 커피프레스 보온병도 샀는데,

무엇보다도 이 보온병이 마음에 쏙 들어서 무척 기분이 좋다.

 

 

 

 

 

 

 

 

 

 

 

 

 

 

 

 

 

 

 

 

 

 

 

 

 

 

 

 

 

 

 

 

 

 

 

 

 

 

Globtrotter에서 숙소 돌아와서 다시 자전거 디레일러를 고치러 자전거 샾에 갔다.

세워둔 자전거가 넘어지면서 뒷바퀴 디레일러가 손상을 받은 것이다.

고치고 나서 얼마냐고 물어니 수리비를 고사한다.

서양에서는 철저히 수공료를 챙기는 것으로 아는데 의외다.

여기서 헬멧카바까지 장만하였으니 강우에 대한 대비는 충분히 한 셈이다.

 

 

침대에 누워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여성 룸메이트 하나가 들어섰다. 일본 지바에서 독일 만하임에 발레를 전공하기 위해서 유학을 왔다는데 몸매와 미모가 발레와는 인연이 없어 보인다. 해외에서 경험하는 일본인들은 대체로 매우 얌전하고, 언행이 매우 조심스러워서 소극적인 사람처럼 보이는데 이 여성도 마찬가지다. 조금 후에는 프랑스 젊은이가 크다란 트렁크 2개를 끌고 들어왔다. 이름이 Guillaume인데 발음은 기욤므이다. 기욤므는 물설고 낮설은 이곳에서 직장을 구해야 하는데 우선 베를린에서 지낼 아프트를 구해야 한단다. 요즘 젊이들을 보면 안쓰럽다.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젊은이들은 취업을 하기 위해서 방랑하는 것 같다. 미국 시카고의 어느 호스텔에서도 모로코에서 온 청년과 같은 방을 사용한 적이 있다. 그도 불법취업하려고 시카고에 왔다는데, 나는 건방스럽게도 포기하고 너희 나라고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불법취업을 했다한들 그 삶이 결코 행복해질 것 같지가 않아서였다. 지금 유럽공동체에서는 얼마든지 다른 나라에서 취업이 자유롭다고 한다.

아침에 봐 놓았던 케밥집에서 저녁을 먹는데 기욤므도 왔다. 기욤므와 나같은 백수들에게는 케밥이 딱이다. 맛도 좋고 양도 무척 많은데 가격은 겨우 3.6유로이다. 9유로 짜리 Subway보다 나은 것 같다. 나라가 부강하지 못하면 그 음식조차도 제대로 대접을 못받는다. 일본음식은 실재 이상의 대접을 받는데, 맛있는 중국음식은 대접을 제대로 못받는 게 아닐까. 대접이 소홀하니까 양으로 승부를 걸려고 하는데 그것이 도리어 중국음식을 얕잡아보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케밥의 원산지는 터키인데 독일에는 터키인들이 많이 이주해서 살고 있다. 지중해 5개국을 여행할 때는 이 케밥이 사실상 나의 주식이었다. 거기서 케밥이 없었다면 나의 식생활은 곤란을 겪었을 것이다. 케밥에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아주 작은 고추 피클이 함께 나오는데 요것이 매운 정도가 한결 같으면서 내 입맛에 딱 맞다.

여행을 할 때는 언제나 첫 1주간이 무척 피곤한데, 첫 주가 지나면 조금씩 적응이 되면서 나아진다. 특히 첫 유럽배낭여행 때가 더욱 그랬다. 시차 때문에 그랬기도 했지만 별로 걸어다니는 생활을 하고 있지 않던 내가 갑자기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조금이라도 더 보겠다고 죽어라고 돌아다녔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때 돌아다니는 내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놓았드라면 아마도 우스꽝스러울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미친 듯이 돌아다녔던 것이다. 이제는 그런 시기는 지났다.

호스텔의 방을 세로 배정받아서 다른 방으로 옮겼다. 어제 밤을 지냈던 방은 단체손님들에게 이미 팔렸기 때문이다. 짐을 정리하고 나니 모든 준비물 장만이 완료되어서 기분이 한결 나아졌고, 여행을 하겠다는 의욕이 조금 생긴다. 오후 5시 쯤에 오늘의 일과를 끝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호스텔 근처의 인터넷카페에 들어가서 나의 블로그에 사진을 올리려 하니 너무 느려서 위의 4장의 사진을 올리고 나서는 포기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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