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Europe

드레스덴1(Dresden)

박희욱 2013. 8. 14. 23:44

 

오전 9시 32분에 출발한 열차는 산은 고사하고 언덕 하나 보이지 않는 평원을 달렸다. 우리는 어찌하여 70%가 산지인 땅덩어리를 차지하였는가. 출발할 때는 구름이 잔뜩 낀 찌푸린 하늘이었으나 점차 개이기 시작했다. 차창밖의 나무들은 한 창 신록을 솟아올리고 있었고 그 이파리 들이 햇빛을 받아서 반짝그렸다. 독일하면 흑림이 연상되는데 우리의 홍송과 같은 키큰 붉은 소나무도 있었지만 의외로 주로 활엽수이다. 옛날 우리네 농가들은 취락을 이루고 있었는데 여기는 띄엄 띄엄 따로 떨어져 있다. 아마도 농가당 경작지가 넓어서 그러한것 같다. 저 넓디 넓은 대지가 풍요로워 보인다.

 

옛날에는 저 넓디 넓은 땅이 별로 쓸모가 없었을 것이다. 인간의 노동력으로 농사를 지을 때는 경작할 수 있는 면적이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일사량이 적어서 단위면적당 곡식의 칼로리 생산량도 적었을 것이고, 그래서 목축업이 발달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겠다. 산업이 발달하여 기계력에 의존한 농경이 가능하면서부터 많은 면적을 경작할 수 있게 되어서 농민이 잘 살 수 있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산업발달로 농촌인구가 도시로 이동하므로써 1인당  경작지는 더욱 늘어났으리라. 그래서  잉여 농산물이 많아지고 이것이 문화를 발달시키는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위치가 어딘지도 모르는 Elsterwerda에서 열차를 환승하였다. 나 외에도 자전거 여행자가 보여서 조금 반갑다. 드디어 드레스덴역에 내려서 광장에 나오니 캠핑장으로 가는 길의 방향이 잡히지 않아서 무척 답답하다. 몇 사람을 잡고서 물어보아도 잘 모른다. 할 수 없이 나침반에 의지하여 스마트폰에 저장한 지도로 가지고 길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스마트폰에 저장한 지도로는 길을 찾기가 어렵다. 다음부터는 지도를 종이에 인쇄하고 길을 찾는데 필요한 사항을 기입하여서 가져와야겠다. 조금 가다가 어떤 젊은이에게 물어봐도 시원스럽게 답을 하지 못한다. 나로서는 답답하기 그지 없지만 현지인이라 할지라도 캠핑을 해보지 않은 캠핑장이라면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길가의 청소차 운전수에게 물어보니 왔던 길로 되돌아가란다. 올라왔던 오르막을 다시 내려가라고 하니 난감하다. 그러나 운전수 말이니까 틀림없을 것이다. Back! 한 참 내리막길을 달려서 되돌아가다가 어떤 행인에게 물어보니 내가 가던 길이 맞단다. 어이쿠! 다시 Back! 확신은 서지 않았지만 내가 생각한데로 가보는 수 밖에 없다. 결국 캠핑장을 찾지 못하고  비싼 값을 치루고 호텔에 묵어야 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스쳤다. 오르막을 조금 더 올라가니 지도에 있는 도로명이 보였다. 드뎌 길의 방향을 확실히 잡았고 지나가던 사람이 조금만 더  가면 된단다.

 

캠핑장 요금은 2박에 19유로다. 의외로 싸다! 그런데 싼 이유가 있었다. 부엌과 식당, 그리고 텐트 사이트의 야외용 식탁도 없었고 싱크대만  있었다. 미국이나 뉴질랜드의 캠핑장과는 달리 텐트 사이트에 전력구도 없었다. 유럽에서는 전력구가 있는 사이트를 사용하려면 별도의 전기요금을 내어야 하는 것이었다.

오후에는 활짝 개이었다가 저녁 때는 다시 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재체기가 나온다. 나는 예사로 여겼는데 감기가 걸린 것이다. 감기에 걸렸던 기억이 까마득한데 여기서 감기에 걸리다니! 콧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한다. 감기에 걸릴만한 환경에 노출되지도 않았는데, 좀 이상하다.

 

 

베를린에서 드레스덴으로 가는 길

 

 열차에 승차한 깜장야크

저 물통은 분실하고 말았다.

 

 

 

위의 고리로 자전거를 걸어서 고정한다.

 

 

 

 

 

 

 

 

 2층칸 내부

2층칸은 흔들림이 커서 조금 어지러웠다.

 

 

 

드레스덴행 열차를 환승한 엘스테르베르다역

 

 

 

 

 

 

 

 

 

 

 

 

 

 

 

 

 

 

 

 

 

 

 

 

 

 

 

드레스덴 중앙역에서 캠핑장으로

 

 드레스덴역에 하차한 깜장야크

 

 

 

 

 캠핑장 찾아가는 길

 

 

 

 

 캠핑장의 캠프밴

대부분이 대여용인 것으로 보인다.

 

 

 

첫 캠핑장 Campingplatz Mockritz, Dresden

드레스덴 중앙역에서 남쪽으로 4.5km에 위치

 

 

5월 9일(목) 흐리고 비

 

오늘도 일어나보니 어김없이 5시다. 화장실에 가려고 텐트 밖으로 나와보니 온갖 잡새들이 울어대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귀가 아플 정도다. 오래간만에 듣는 새소리인데도 불구하고  탐탐치가 않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작은 것이 시끄럽다. 독수리도 우는지 모르겠다. 사람도 성숙하면 할수록 말소리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말을 붙이지 않으면 말하기를 삼간다. 내 주위를 둘러봐도 시끄러운 사람은 모두 깡통이다. 옛부터 깡통이 시끄럽다고 하지 않았는가. 내게는 말이 많은가 또는 적은가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나타내는 측도이다. 설교단에서도 마찬가지다. 목청을 높이면 높일 수록 그 사람은 하나님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하나님이 말씀을 하시든가?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말을 할 수가 없다.

 

화장실에 가니 엊저녁에 잊어버리고 왔던 샤워타월과 칫솔이 나를 반긴다. '바보!' 여행중에 무엇을 분실하면 두려워진다. 그것은 다른 것도 분실을 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며, 게다가 내가 사는 곳에서는 어디서 무엇을 살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지만 여행중에는 분실물을 새로 구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화장실에서 돌아오니 하늘의 구름도 옅어지고 그새 새들의 지저귐도 잦아들어버렸다. 새들도 새벽에 우는 닭소리처럼 우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모양이다. 어떤 나무 위에서 꾀꼬리처럼 아름다운 노래(나는 꾀고리 소리를 모름)를 부르는 놈이 있어서 그 모습을 보려고 나무가지 사이로 찾아보아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겨우 발견을 하고 보니 엄지손가락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 녀석이 그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내다니 기특하다.

 

 

캠핑장에서 드레스덴 중심부로

 

 

독일에서는 어디서나 사과꽃이 만발하였다.

 

 

 

 

초등학교시절 선생님으로부터 독일에서는 사과가 떨어져 있어도 아무도 주워가지 않는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 시절 우리들은 제삿날이 아니면 능금을 맛볼 수도 없었다.

그것도 사과 한개로 삼촌과 동생들과 함께 나눠 먹었다.

그런 우리가 떨어진 사과를 본다면 얼른 주워서 호주머니에 감췄을 것이다.

능금. 이제 사라져가는 이름인가 보다. 그때는 능금이라고 불렀다.

 

 

 

아침을 해먹고  산뜻한 기분으로 시내 중심부 관광을 나섰다.

 

 

 

 

사과꽃이 막 피어오를 때는 살얼음 같이 옅은 핑크빛을 띄어서

신선하고도 에로틱한 느낌이 대단히 아름답다.

 

 

 

 

어제 하차하였던 드레스덴 중앙역

 

 

 

 

시내 중심부로 가는 자전거길이 멋지다.

 

 

 

 

북유럽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혼자서 신나게 놀고 있다.

 

 

 



 

 

 


 

 

 

 

 

 

 

아래에서 치솟아 오르면서 물구나무를 서는 묘기를 보였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포즈을 취해줄 것을 부탁했다.

 

 

 

 

뒤에 보이는 것은 크로이츠 교회

 

 

 

 

나는 여기서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빨강불에도 그냥 지나쳤다.

독일 사람들은 어떵게 하나 싶어서 되돌아 와서 지켜 보았다.

 

 

 

그랬더니 차도 사람도 없어도 이렇게 신호를 준수하는 것이었다.

준법정신이 좋은 것인가 아니면 융통성이 없는 것인가?

 

 

 

 

 

 

 

 

 

 

 

드레스덴 중심부

엘베강 선착장

 

 

 

 

 

 

 

 

우리나라에는 강을 따라 운항하는 유람선이 없다.

하상계수가 무려 300에 이러러서 강물의 수량의 변화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엘베강을 건너서 본 풍경

 

 

 

 

아우구스투스 다리

 

 

 

 

 

우축 앞쪽이 미술대학이고 그 뒤쪽 높은 건물이 성모교회이다.

정중앙이 알베르티눔 미술관인데 9유로가 아까워서 망서리다가 입장을 그만두었는데 실수였다.

 

 

 

내가 본 강물은 모두 이와 같은 색갈이다.

평원을 흐르는 강이라 유속이 느려서 산화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물을 마실 수 없어서 맥주를 양조하여 음료로 대신 이용한 것이다.

 

 

 

 

알베르티눔 미술관

 

 

 

 

좌측이 미술대학

 

 

 

 

부륄의 테라스와 멀리 보이는 카롤라 다리

 

 

 

 

 

 

 

 

 

시내쪽 강변에서 본 아우구스투스 다리

 

 

 

 

미술대학

 

 

 

 

 

 

 

 

 

 

 

 

 

 

베를린은 기대의 반에도 미치지 못했는데 드레스덴은 기대의 2배 이상이었다.

 

 

 

 

엘베강 유람선

 

 

 

 

드레스덴의 멋진 모습이 황홀했다.

 

 

 

 

 

 

 

 

 

 

 

 

 

 

왠 일로 이렇게 관광객이 많은가?

 

 

 

 

조각술이 놀랍다.

살아 있어서 곧 일어날 것 같지 않은가.

 

 

 

 

 

 

 

 

 

나무를 이렇게 못살게 굴어서야!

 

 

 

 

1945년 2월 연합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드레스덴

 

2차대전이 끝나고 동독의 가장 낙후된 도시로 남았다가

통독후에야 비로소 회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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