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글

나는 72학번이다

박희욱 2024. 2. 22. 08:22
나는 72학번이다.
그 당시는 박정희가 3선개헌을 하고 유신헌법을 선포했던 시기다.
당연히 나도 데모대에 휩쓸렸고 그러다가 경찰서에 잡혀가서 하룻밤을 지내기도 했다.
그를 증오했던 나는 그님의 대가리에 총알이 박히기를 갈망했다.
18년후에 유럽배낭여행을 간 것이었다.
나는 촌음을 아끼면서 미친듯이 유럽을 구경했다.
아마도 같은 기간의 다른 배낭여행자들보다 2배 이상 구경을 했을 것이다.
그당시 키 179cm에 63kg의 날씬한(?) 몸매였던 것이 돌아오니까 35일만에 7kg이나 빠져 있었다.
아내는 내 몰골에 놀라고 말았다.
돈을 아끼느라, 시간을 아끼느라 제대로 먹지 못하고 몸을 혹사한 결과였다.
독일의 퓟센을 출발하여 뮌헨을 거쳐서 벨기에 브뤼셀에 도착하기까지
5끼만에 햄버거를 먹었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미련한 여행을 한 것은 그때는 두번다시 유럽여행을 할 기회가 올 줄은 몰라서였는데,
그 이후 6번에 걸쳐서 거의 350일간 유럽여행을 하였다.
그때 나는 영국을 구경하고 도버해협을 페리로 건너서 프랑스 파리로 왔다.
파리개선문을 보고나서 말로만 들었던 샹젤리제거리의 어느 카페에 들렀다.
나는 거기 앉아서 북받히는 울음을 삼키면서 붉어진 눈을 닦아야 했다.
견눈질한 손님들은 내 모습을 보고 의아스러워 했을 것이다.
나는 이때 비로소 박정희를 이해하게 되었다.
유럽이 이렇게 경악스러이 발전했을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자괴감이 온몸을 흔들었다.
민주화고 나발이고 경제가 최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박정희는 그 경제개발을 위해서 모든 정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박정희는 올해는 일하는 해 모두 나서자고 독려했다.
아는가? 한민족은 본래 게으른 민족이었다는 것을.
양반들은 밥먹을 때와 글쓸 때가 아니면 손도 까딱하지 않았다.
노비들은 상전 눈치만 보면서 놀 궁리만 했던 민족이다.
구한말 조선인들이 잘하는 것이 딱 하나 있었는데
바로 지게에 산더미같은 큰 짐을 질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것은 도로도 없고 제대로 된 수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제 돈이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경제력 없는 민주화는 공염불이다.
온 국민이 민주화를 합창해도 민주화는 되지 않는다.
온 국민이 함께 피를 흘려도 민주화는 되지 않는다.
인심만 곳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도 곳간에서 나온다.
프랑스혁명도 경제력에 의해서 발발했으나
그 경제력이 부족해서 실패하고 말았다.
소위 말하는 운동권은 대한민국의 경제기적에 손톱만큼도 기여한 바가 없고,
그 과실만 따먹는 무리들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경제기적의 역군들을 향해서 손가락질하고 있다.
이 가증스런 무리들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병들게 할 것이다.
아니, 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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