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가는 길 811

행복

행복하려면 성공보다는 인성과 성품이 좋아야 한다. 아무리 홀로 성공한다해도, 그것은 그 순간의 기쁨 뿐이고 행복감과는 거리가 멀다. 비유를 들자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도 홀로 먹는다면 포만감은 느낄지언정 행복감은 기대하기 어렵다. 음식은 가족이나 몇몇 지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먹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 그것은 행복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사람이라면 행복감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수십명이 단체로 음식을 먹는다면, 그것 또한 행복감을 느끼기 어렵다. 제아무리 깨달은 사람이라할지라도 깊은 산속에서 홀로 행복할 수는 없다. 나는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는 사람이라 행복에는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 나의 사전에는 행복은 없다.

세상은 꿈이다

오쇼 라즈니쉬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그대가 이해한다면, 만일 그대가 자각하고 있다면, 만일 그대가 께어 있다면, 그대는 세상의 사물을 알 수 있다. 심지어 항상 실재라고 생각했던 것이 더 이상 실재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때는 세상 모든 것이 꿈이다. 이것이 붓다가 세상이 꿈이라고 말한 의미다. 명심하라, 붓다가 그렇게 말한 것은 세상을 비난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그 의미는 세상을 포기하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붓다는 단지, 세상을 있는 그대로 알라고 말했을 뿐이다.' 사실, 세상이 꿈인 것은 아니다. 다만, 그대는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꿈꾸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 그대는 눈으로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생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말..

나는 못난 물고기

이놈의 강 하류에 살다보니 정말 싫다. 물도 혼탁하고, 가물치같은 더러운 놈들이 득시글거린다. 어디 좋은 데 없나? 그러면 좋은 데가 있다, 상류로 올라가라. 상류에 올라왔더니 이곳도 못살겠다. 물도 차갑고, 배도 고프고, 너무 외롭다. 어디 더 좋은데 없나? 그러면 더 좋은데가 있다, 중류로 다시 내려가라. 중류로 내려와보니 이곳도 별로다. 물도 미적지근하고, 이놈 저놈들이 너무 시끄럽다. 어디 더 좋은 데 더 없나? 그렇다면, 도리없이 바다로 내려가서 짠물에 염장이 되는 수밖에 없다.

걱정

喜怒愛樂과 같은 감정은 현재에 발생하는 실존적인 것이다. 반면, 걱정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며, 대개의 두려움도 실존적인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걱정이다. 그러므로 걱정이나 두려움은 사실상 미래에 대한 상상이다. 만일 미래를 상상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하면 깨어 있다면 걱정이나 두려움은 생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걱정이나 두려움이 일어나면, 그 순간 자신은 깨어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자각하여야 한다.

삶과 죽음

자석의 N극과 S극이 공존하듯이 삶과 죽음 또한 함께 공존한다. 자석의 N극과 S극을 분리하면 거기에 다시 반대극이 생기듯이 삶 또한 마찬가지라서 절대로 죽음과 분리할 수 없다. 죽음이 사라지면 삶 또한 즉시 정지된다, 비록 육체가 숨은 쉬고 있을지라도. 죽음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삶과 분리된 별개의 죽음이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면, 삶 또한 두렵지 않을 수없다. 삶에 천착하면 죽음이 떠나지 않는다. 죽음을 버리면 삶 또한 내버려진다. 삶과 죽음이 내버려진 거기에 무슨 두려움이 있겠는가. 두려움이 없는 삶, 이것이 진정한 삶이다. * 죽음은 우주의 암흑물질과 같은 것이라서, 사람들이 잘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죽음이 있어서 비로소 삶이 일어나는 것이다.

께어나라

그대는 무엇인가를 걱정하거나 두려워하는가? 그렇다면, 무의식 상태에서 벗어나서 의식적으로 께어나라. 그러면 그 걱정이나 두려움이 아침안개처럼 사라질 것이다. 그대는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증오하는가? 그렇다면, 무의식 상태에서 벗어나서 의식적으로 께어나라. 그러면 그 미움이나 증오심이 아침안개처럼 사라질 것이다. 어둠은 별도로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빛이 부재하는 현상이다. 그렇듯이 모든 부정적인 심리상태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빛의 부재상태, 즉 께어나지 못한 무의식적 상태이기 때문이다.

선악과

옛날 북극권의 에스키모들은 밤이라는 것을 몰랐다. 지구인력권을 벗어나서 우주밖으로 나가면 태양은 지지 않는다. 낮과 밤이 있는 것은 내가 이 지구상에 발을 붙이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다. 우주에는 밤과 낮이 따로 없드시 선과 악이 따로 없고, 다만 에너지가 있을 뿐이다. 선과 악이 분별되는 것은 이땅에 살고 있는 사람의 마음의 현상일 뿐이다. 소위 말하는 양심은 악심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러니 선악과를 따먹지 마라, 즉 무심으로 가라는 말이다. 우주를 움직이는 것은 에너지 이듯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힘이다. 신은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유혹적이기는 하지만, 선악과를 금지한 신은, 사실은 힘이다. 대양의 범선이 바람을 타고 누볐드시 역사는 변함없이 힘에 의해서 흘러왔다. 다만, 힘의 소재만이..

진실로 두려워 해야 하는 것

무엇을 두려워 하는가 진실로 진실해져 보라 거기에 자유와 평화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거꾸로 자유와 평화를 얻기 위해서 진실을 외면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나와 전혀 관계가 없는 일에 대해서는 진실할 수 있으나 나와 관계가 조금이라도 있는 경우에는 진실이 멀어져 간다 그러므로 나(我)가 문제다. 나를 그대로 두고서는, 진실로 진실해질 수 없으니 자유와 평화 또한 얻을 수 없다 거짓을 직업으로 하는 정치인들만큼 자유와 평화를 추구하는 자들도 별로 없다. 그러나 그들만큼 자유와 평화와는 거리가 먼 인간들도 별로 없다. 나에 의한, 나를 위한, 나의 자유와 평화를 갈구하기 때문이다. 진실로 진실할 때, 거기에 아무 꺼리낌이 없고, 그것이 바로 자유와 평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