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조니-당신이 아름다움 속에서 걷기를!
위의 말은 김남희님이 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의 서문에 나오는 말로서 나바호 인디언들의 인사말이라고 한다.
정말 아름답고 의미심장한 최고의 인사말이 아닌가 한다.
류시화의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에 있는 수우족 인디언 노란 종달새의 기도문이 생각난다.
당신의 숨결이 세상 만물에게 생명을 줍니다.
나는 당신의 많은 자식들 가운데 작고 힘없는 아이입니다.
내게 당신의 힘과 지혜를 주소서.
나로 하여금 아름다움 안에서 걷게 하시고
내 두 눈이 오래도록 석양을 볼 수 있게 하소서.
당신이 만든 물건들을 내 손이 존중하게 하시고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내 귀를 예민하게 하소서.
당신이 내 부족 사람들에게 가르쳐 준 것들을
나 또한 알게 하시고
당신이 모든 나뭇잎, 모든 돌 틈에 감춰 둔 교훈들을
나 또한 배우게 하소서.
내 형제들보다 더 위대해 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큰 적인 내 자신과 싸울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소서.
나로 하여금 깨끗한 손, 똑바른 눈으로
언제라도 당신에게 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소서.
그래서 저 노을이 지듯이 내 목숨이 사라질 때
내 영혼이 부끄럼없이
당신에게 갈 수 있게 하소서.
이 시에서 내가 가장 주목하는귀절은 '나로 하여금 아름다움 안에서 걷게 하시고'이다.
아마도 인디언들은 아메리카대륙의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하여 신에게 다가간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오래전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만났던 대단히 거만한 버클리 대학생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지금의 미국이 아니라 과거에 5천만 마리의 버팔로 때가 아메리카 대륙을 질주할 때가 더 그립다."라고.
우리는 우리 생할의 주변에 있는 소소한 아름다움에는 너무 소홀히 하는 것 같다.
아마도 그러한 것들은 대게 비용이 들지 않은 공짜이기 때문이리라.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움보다는 오히려 재미에 더 현혹 되는 것 같다.
지난번 아테네의 어스름이 깃든 신타그마 거리에서 만난 팬플루트, 바이올린, 그리고 기타 트리오가 연주하는 '엘 콘도 파사'는 정말 아름다웠다.
늦은 저녁무렵의 외로운 여행객의 여수를 다독거려 주기에 정말 알맞은 곡이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연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모자 속에는 동전이 달랑 몇개 밖에 없는 반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벌이는 판토마임을 하는 광대의 모자 속에는 동전이 제법 쌓이고 있었다.
스펜인 마드리드의 태양의광장에서도 그랬다.
첼로를 연주하는 아가씨의 전대는 을씨년스러웠고,그 옆 광대의 전대는 훨씬 풍성해 보였다.
그 연주자가 안쓰러워서 맥주 한 캔을 사 주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또,영화 '타이타닉'의 한 장면에서 얼마나 눈시울을 적셔야 했던지!
타이타닉이 침몰하는 순간에 연주자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이제 연주를 그만하자. 아무도 듣지 않는다".
그러자 다른 한 사람이 말한다.
"언제는 우리의 연주를 누가 들어 주었는가!".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움에 대하여 얼마나 소홀한지!
진리를 추구하라.
진리를 찾을 수 없다면, 사랑을 추구하라.
사랑도 찾을 수 없다면, 아름다움을 추구하라.
사실, 아름다움이 가장 쉬울 수 있다.
당신은 태양이 지는 석양을 얼마나 자주, 그리고 오랫동안 응시할 수 있는가?
그리스 에게해의 산토리니 섬의 석양은 유명하다.
그래서 이 섬에 오는 사람들은 이곳의 석양을 지켜보려고 몰려든다.
그러면서도 집으로 돌아가면 그 아름다웠던 석양을 좀 처럼 찾지 않는다.
동일한 태양이 연출하는 석양임에도 불구하고.
진, 선, 미는 동일한 것의 세가지 측면으로서,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진리, 사랑, 아름다움 또한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즉, 3위 1체이다.
진리가 사랑이고,
사랑이 아름다움이며,
아름다움이 진리이다.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진리가 아름다움이고,
아름다움이 사랑이며,
사랑이 진리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진다. '신은 사랑이다.'
신은 빛이라 했던가?
빛은 밝음(진리)과 에너지(사랑)와 아름다움(미)을 모두 포함한다.
빛을 분해하여서 이 세가지를 분리할 수 없드시,
진리, 사랑, 아름다움 또한 분리할 수 없다.
나도 말하고 싶다. 당신이 아름다움 속에서 걷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