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르는 강물처럼...

박희욱 2009. 4. 18. 11:29

지난 해 연말에 내가 재직하였던 대학의 한 후배교수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는 놀라움과 함께 무척 가슴이 아팠다. 아내와 두 딸과 늦둥이 아들을 남기고 혼자서 훌적 떠나버린 것이다. 성마른 나와는 달리 화를 내거나, 남의 비방을 좀처럼 하지 않는, 좋은 성품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교수로서의 능력도 탁월하였다. 학위는 물론이려니와 기술사자격도 2개나 가지고 있었다. 아까운 사람이 48세라는 짧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그는 죽기 3개월 전, 그러니까 그해 9월에 나의 화실을 찾아와서 말하기를 자신이 간암으로 죽을 뻔했다고 했다. 그렇게도 건강하였던 그가 간암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테니스를 무척 좋아하는 건강한 사람이었다. 담배는 물론이고 맥주조차도 마시지 않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신학대학원까지 졸업하였다. 그러나 나에게 한 번도 종교 이야기를 먼저 꺼낸 적은 없었다.

그는 그해 5월에 간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이야기를 하였다. 부산의 어느 대학병원에서 이미 간암말기로서 수술을 할 수가 없다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유언을 하려고 생각하니 별 할 말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내에게 자신은 죽어도 천국에 갈 테니 아무 걱정말고 당신은 애들과 잘 살아라고 하였단다. 그 말에 아내가 말하기를 당신은 천국에가서 괜찮겠지만 나는 어쩌란 말이냐고. 그래서 그는 살아야되겠다고 생각하고 서울에 가서 수술을 받았으며, 그 결과 2학기에는 주 이틀 강의를 한다는 그였다.

그는 그 전부터 죽음에는 초연한 것 같았으며, 그날도 자신이 얼마나 더 살지는 알 수 없지만 남은 여생은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그러던 그가 죽은 것이다. 비록 부모님과 4명의 가족을 남기고 먼저 떠나야 하는 아픔을 겪었겠지만, 그것조차도 초월하여 평안히 저 세상으로 갔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그 내용은 두 형제가 있었는데, 형은 자랄 때부터 모범생으로서  시카고 대학의 영문학 교수가 되었으며, 동생은 난봉꾼으로서 술과 도박을 즐기는 문제아였다. 동생은 젊은 나이에 도박판에서 권총으로 살해당하는데, 이 영화는 대학을 은퇴한 형이 강물에서 플라이 낚시를 하면서 지나간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이 영화를 감상한 후 무었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영화가 끝나자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처럼 보였다. 그런데, 수년이 지나서 그것의 영문 제목을 본 후에 영화가 주는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것은 ' A river runs through it'였다. 내가 번역한다면 '강물은 강물을 따라서 흐른다'이다. 강물은 정해진 길을 따르지 않는다. 강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강물이 흘러가는 통로가 강이다. 강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끊임없이 변한다. 방향과 폭과 깊이, 그리고 흐르는 길이가 변한다. 강물은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가면서 바다로 나아간다.

몇년전에 인도 뱅골만 연안에 있는 코나락 사원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그곳 주민 한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이곳에 자전거를 타고 오면서 어떤 강의 하구를 보았느냐고. 내가 그렇다고 하니까 800년 전 이 사원이 건립될 때는 그 강이 여기로 흘렀다고 했다. 말하자면 강의 하구가 그 동안 50km를 이동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강들은 인공적인 제방으로 되어버렸다. 그래서 변하지 않는다. 정해진 길을 따라서 흐른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강이 아니라 수로이다. 말하자면 죽은 강이다.

우리는 강에 대하여 이런 질문을 할 수 없다. 너는 왜 이 쪽으로 흘렀나? 너는 왜 길이가 짧은가? 혹은 긴가? 너는 왜 깊이가 얕은가? 혹은 깊은가? 그리고 우리는 강물의 흐름에 대하여 아무런 비판을 할 수가 없다. 강물의 흐름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강은 물의 흐름에 따라서 저절로 만들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 영화에서 요절한 동생의 삶과 대학교수로서 은퇴한 형의 삶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동생은 동생대로 자신의 강을 따라 흘러갔고, 형은 형대로 자신의 강을 따라 흘러간 것이다.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잘못됐고 하는 그런 기준이 없다. 그 영화는 우리의 삶이 그렇게 밑도 끝도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삶도 흐르는 강물과 같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목적지도 없이 그냥 그렇게 흘러간다. 그러다가 바다에 이르면, 그 시간이 언제이든 그것으로 완성이다. 그 후배 교수도 그것으로서 자기의 삶을 완성한 것이다. 남은 가족은 또 그들 나름대로의 강을 따라서 삶을 엮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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