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95세 생일날 쓰는 편지

박희욱 2009. 4. 18. 11:40

95세 생일날 쓰는 편지!


나는 65세에 직장에서 . . . 정년퇴직을 했습니다. 30년 전이지요 . . .

내 분야는 특수한 전문직이어서

남들보다는 더 오래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불경기에 직장에서 명예퇴직이니,구조조정이니 하는 퇴직의 회오리바람이 거세게 불 때도

내가 65세까지 끄떡없이 버티며 정해진 정년에 명예롭게 퇴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직장에서

내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외에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나는 젊어서 직장에 들어가기 전에

그 분야에서는 최고의  실력자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힘을 기울였는지 모릅니다.


더구나 나이가 들수록 젊은이들에게 밀리지 않으려고

끝없이 실력을 닦았습니다.

그렇게 노력한 덕에 아무도 그 분야에서

내 실력을 능가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떤 젊은이도 나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덕분에 나는 무척 명예스럽게 퇴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정년이 되자 직장에서는 내게 좀 더 기회를 주려고 했지만

나는 사양했어요.

65세의 나이쯤 되고 보니,

나도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연금을 받으며 안락한 여생을 즐기다가 남은 인생을 멋지게마감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평생 후회가 없는 삶을 살았기에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내가 30년 후인 95살 생일 때

자식들에게서 생일 케이크를 받는 순간

얼마나 내 인생에 대해 통한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그 이후 30년의 삶은 가장 부끄럽고

후회가 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정년퇴직 후에 이 제 나는 다 살았다. 남은 생애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덤으로 주어졌을 뿐이다하는

그저 그런 생각만 하면서 하루 하루를 허송세월 했던 것입니다.

죽기를 기다리는 삶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던 것입니다.

30년이라는 세월은 지금의 내 나이 95세로 따져 보아도 생애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막대한 시간입니다.


내가 95년의 생일을 맞으면서 가장 후회한 것은 왜 30 년이라는 소중한 인생을 무기력하게 낭비하면서 살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만일 내가 정년퇴직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때 나 스스로가 다른 무엇을 시작하기에

너무 늦었고, 늙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살이지만 건강하고 정신이 또렷합니다.

혹시 앞으로 10년이나 20년을 더 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내가 혹시 10년 후에라도

왜 95살 때 공부를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 . . . . . . 



 

 

1. 내게 나이가 얼마냐고 물으면 나는 대답할 것입니다. '저는 나이가 없습니다'라고. 2. 95살의 주인공은 65세로 다시 돌아간다한들 새로운 어떤 것을 시작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평생을 앞만 보고 살아왔습니다. 빙산을 발견한 타이타닉처럼 방향전환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설령 되돌아 간다 한들, 똑같이 남들과 경쟁해서 우위에 설 궁리만 할 것입니다. 그것이 영어이든, 아니면 진리터득이든 간에. 순전히 근거없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대개의 경우 만 55세를 넘어면 새로운 어떤 것을 시작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시늉은 내겠지만. 08.04.27 08:17

나의 경우는, 내 능력으로는 외국어의 습득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포기한지도 오래지요. 가능하다고 해도 소중한 나의 삶의 상당부분을 소진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외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을 보면 나는 고개를 갸웃하지요. 내 친구의 어머니는 의사였는데 72세에 은퇴하여 영어회화 학원에 다녔습니다. 인생의 만년을 어학공부에 쏟아넣은 그 분은 그렇게 배운 영어를 잘 이용하고 계신지 모르겠네요. 아니면, 좀 더 일찍 영어회화를 시작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계실까? 08.04.24 20:35

이 글을 읽어 보면 - 내 생각이지만 - 주인공의 잘못은 65세 이후가 아니라, 65세가 되기 이전인 것같습니다. 누구에게나 65세 이후의 삶의 뿌리는 65세 이전의 삶에 뿌리박혀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 노인은 65세 전과 후의 삶이 공히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08.04.24 20:37

교육의 촛점은 인간을 유용한 도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게 도와 주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오늘의 교육은 그 반대인 것 같다. 망치는 유용하다. 그러나 꽃은 아무 쓸모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꽃으로 피어나야 한다. 08.04.25 02:45

몇년전 경성대 뒷문에서 고사리손들이 엄마의 손을 잡고 무리지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무슨일인지 물어보았더니, 한자능력시험을 치르고 나온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나의 가슴이 아렸던지! 마치 새싹에 거름준다고 똥을 퍼붓는 느낌이었다. 08.04.27 08:00

내 딸이 이번에 토익시험에서 940점을 받았다. 제법 상당한 점수인 것으로 알지만 - 취직시험에는 대단히 유용하겠지만 - 얼마나 써먹을지 두고 볼 일이다. 08.04.25 02:33

지난 번 이집트 여행에서 만났던 와싱턴 대학 어학연수원 강사인 미국여인은 내게 자기 영어수업클라스의 반이 한국학생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녀에게 영어공부는 한국사람에게 하나의 재난(disaster)이라고 했더니, 당신은 영어를 배웠기 때문에 이렇게 세계여행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였다. 내 생각으로는 해외여행을 하는데 꼭 필요한 영어는 중2 정도의 영어실력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08.04.25 02:56

현대문명의 특질은 인간의 가치를 기능적이고도 상품적인 측면에서 평가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거의 예외없이 자신을 상품성이 높은 도구적 존재로 따듬는데 삶을 쏟아붓고 있다. 인간은 이제 젖을 떼자 마자 지식을 머리속에 집어 넣기 시작하여 늙어 죽을 때까지 온갖 정보와 지식을 컴퓨터의 기억장치처럼 입력시키고 있다. 마치 그 지식과 정보가 자신의 존재자체인 것처럼! 08.05.01 22:41

내가 보기에는 이제 인간은 도구적 존재가 되었다. 1주일에 하루, 이틀 쉬고 일을 한다. 나의 첫 직장에서는 1개월에 단 이틀의 휴식일이 있을 뿐이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일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것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차이점은 있다. 오늘날에는 일과 놀이가 분명한 경계가 있어서, 일을 할 때는 점차적으로 전투적으로 일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와 반대로 옛날에는 비록 육체적으로 힘들었겠지만, 일과 놀이와 운동과 스포와 이웃사람과의 사교까지도 한 덩어리였다. 그 증거로, 오늘날 직장에서 노래부르면서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옛날에는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일했다. 노동요가 노래의 기원이다. 08.05.01 22:42

현대인들을 많을 것을 가졌음에도 풍요로울 수가 없다. 옛날 사람들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풍요로울 수 있었다. 현대인들은 시간이 없다. 옛날 사람들은 가진 것이 시간 뿐이었을 것이다. 천국에는 시계가 없다. 08.04.27 08:09

버트란트 러셀은 말했다. '시간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문이다'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진리로 들어가는 문이다"라고.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생각과 마음의 현상일 뿐이다. 08.04.27 07:56

설령, 이 주인공이 65세이전으로 되돌아 간다할지라도 65세 이전과 똑같이 남들보다 우위에 설 궁리만 할 것입니다. 그것이 영어회화이든 무었이든 간에. 그가 진리터득의 길을 간다할지라도 그것 또한 남들보다 우위에 서기위한 하나의 방편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유형의 인간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사실은, 도둑이 끼치는 해악보다도 더 클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는 그러한 유형의 인간양산에 가편하고 있습니다. 08.04.28 20:29

 

당신이 지금하고 있는 일이 타인과 함께 나눌수록 더 좋은 것이라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만약,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타인과 나눌수록 좋지 못한 것이라면 그것은 좋지 못한일이다. 선두에 서는 일은 나혼자만인 것이 가장 좋다. 08.05.02 19:58

이미 영화화한 '티벳에서의 7년'을 쓴 '하라'는 올림픽 육상 금메달리스트였다. 그는 히말리아의 마칼루봉 정복을 위하여 네팔에 도착하였다. 그는 어떤 이발관에 들렀을 때 이 사실을 이발사에게 이야기하자, 그 이발사는 이렇게 말했다. "참 이상도 하군요. 당신들은 자아성취를 위하여 혼신을 다하는데, 정작 우리들은 그 자아를 소멸시키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그 당시에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정산정복을 하지 못하고 티벳에서 7년을 보낸 후에야 고향 오스트리아의 비인으로 되돌아 갈 수 있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떠날 때 임신중이었던 아내와 처음 대면한 자식은 이미 친구의 아내와 자식이 되어 있었다. 08.05.03 02:51

우리는 하라의 경우처럼 부질없는 것을 위하여 정말 소중한 것을 희생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부질없는 것과 소중한 것의 구분은 각자의 가치관에 달린 일이다. 나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당신이 한 줄기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잎에서 행복을 찾을 수 없다면 어디에서도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없다"고. 08.05.03 19:40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식  (0) 2009.04.18
발가락 5개인 발만 완전한 발인가?  (0) 2009.04.18
흐르는 강물처럼...  (0) 2009.04.18
나는 살기 위해서 안배운다  (0) 2009.04.18
카심 이야기  (0) 2009.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