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왜 필요한가?
그것은 시정에 젖어서 살 줄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필요하다.
사공은 항상 강물위에서 노를 저어며 강물의 시정에 사로잡힐 수 있다. 그래서 그에게는 시가 불필요하다.
선비는 강물의 시정을 항상 즐길 수가 없다. 그래서 그에게는 시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시는 하나의 대용물일이다.
도덕이 왜 필요한가?
어린이는 싫으면 싫다하고, 좋으면 좋다고 한다. 그래서 그에게는 도덕이 불필요하다.
공자는 싫으도 싫다고 할 수 없고, 좋아도 좋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그에게는 도덕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어린이처럼 순수한 사람에게는 도덕이 불필요하다.
그러니까 도덕은 순수하지 못한 사람들게게 필요한 하나의 대용물이다.
지식이 왜 필요한가?
직관력을 가진자에게는 지식은 불필요하다.
직관력이 없는 자에게는 지식이 필요하다.
지식도 직관력에 대응하는 하나의 대용물이다.
그 직관력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가슴에서 나온다.
그 때 그 직관력은 통찰력이 된다.
삶을 제대로 살 줄 아는 사람에게는 지식이 불필요하다.
삶을 제대로 살 줄 모르는 사람은 지식에 의존해야 한다.
마치, 다리가 튼튼한 사람에게는 지팡이가 불필요하지만
다리가 불편한 사람은 지팡이에 의존해야 하듯이.
본래, 신은 인간으로 하여금 지식 없이도 잘 살 수 있게 창조하셨다.
그러나 에덴동산의 사탄이 지식이라는 지팡이의 유용성으로써 인간을 유혹하였다.
지팡이는 편리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지팡이를 자주 사용해왔다. 점점 많이 사용하였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이제 두 다리로써 설 수조차 없게 되어버렸다.
자팡이의 사용을 점차 줄여나가라.
그럼으로써 신이 주신 두 다리를 튼튼히 하라.
그리하여 어느날 지팡이를 내던져버려라.
그것은 다리의 대용물이다.
순수해져라.
그대는 본래 순수였다.
그래서 순수는 배울 필요조차도 없는것이다.
다만, 지식이 순수를 오염시켰을 뿐이다.
본래면목으로 돌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