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Europe

드레스덴에서 마이센(From Dresden to Meissen)

박희욱 2013. 8. 15. 21:42

 

5월 10일(금)

 

 

하루 종일 텐트 안에서 죽쳤다.

 

 

 

새벽부터 떨어지던 빗방울이 그칠 줄을 모른다. 다른 도리없이 오늘은 그냥 텐트안에서 죽쳐야겠다.

정말이지 이번만큼은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여행을 하자.

항상 마음을 그렇게 먹었어도 정작은 최종목적지를 향하여 서둘러 여행을 하곤 했다.

첫 유럽배낭여행 때는 정말이지 미친 듯이 돌아다녔고, 촌각이라도 헛되이 시간을 보내게 되면 무척 짜증이 났다.

그래 봤자 목적지에 다다르면 여행이 끝난다. 이제 여행의 경력이 쌓이면서 그런 증세는 차츰 줄어들어 간다. 우리 인생도 그러하다.

바쁘게 살아서 꼭 이루어야 할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삶이란 그냥 사는 것이다. 그렇게 바쁘게 살아봐야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 뿐이다.

 

빗방울은 더욱 열심히 텐트를 때리고 있고, 이웃 텐트에서는  오트바이족들의 왁자지끌한 웃슴소리가 계속 들린다.

홀로인 나는 조금 부럽기도 하지만 과연 즐겁기만 할지는 나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불편한 점이 많을 것이고, 어쩌면 사회성이 부족한 나는, 며칠 정도야 별 문제가 없겠지만 곧 싫증을 낼지도 모른다.

 

여럿이서 함께 여행하면 웃을 수는 있지만 울 수는 없다.

홀로 여행을 하면 웃을 수는 없지만 울 수는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왜 혼자서 여행을 하느냐고 물으면, 나는

울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둘이서 가면 전체가 될 수 없다.

혼자서  가면 전체가 될 수 있다.

 

아침을 대충 해먹고 잠을 청했는데, 간밤에 잠을 충분히 잔데도 불구하고 잠이 잘도  찾아온다.

잠에 지쳐서 일어나 보니 오트바이족들은 우중에도  텐트를 걷고 떠난다.

자전거족인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냥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내가 경험한  유럽의 여름 날씨는 무척 좋았다. 비도 오지 않고 습도도 낮아서 빨래가 쉽게 말랐다.

첫 배낭여행 때는 영국 런던에서 단 한 번 비를 만났을 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름방학이 긴 것은 무더운 여름기후 때문인 것으로  생각했는데,

유럽에서는 그런 것이 아니라 멋진 날씨에 들썩이는 엉덩이를 책상에 붙이고 있을 수 없어서 그러한 것 같았다.

베를린에서는 예상외로 날씨가 좋았는데 여기 드레스덴에 오니까 본색을 내나 보다.

 

예전에는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무척 싫어해서 통학을 할 때 열차나 버스를 기다릴 바에야 걸어서 가기도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런 시간이 두렵지가 않다.

오늘 이렇게 텐트안에 같혀 있어도 답답할 것이 없다.

 

스마트폰에 저장한 음악을 들어보니 ABBA의 '치키티타'가 흘러 나온다.

나에게는 아련한 아픔이 있는 음악이다.

잠시나마 나의 곁에 있었던 여인과 나의 뜻과 관계없이 헤어지고,

아무런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이 1년간 유배당하는 기분으로(비록 스스로 자원을 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 발령을 받아서 떠날 때를 떠올리게 한다.

강력한 비트가 뒷받침되는 곡인데도 불구하고 어딘가 슬픔과 고통이 묻어나는 느낌이 난다.

이 음악은 그때의 나의 심정을 강력히 되살려 주면서 가끔 나의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그런 곡이다.

그때는 이 곡의 가사내용을 제대로 모르고 들었다.

 

      Chiquitita

  

치키티타, 무엇이 문제인지 말해봐.
너는 깊은 슬픔에 빠져있구나
네 눈엔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어.
이런 너를 보니 참 안타까워.
넌 그것을 부정할 수 없어.
넌 너무도 슬프고, 말이 없구나.

 

치키티타, 내게 진실을 말해줘
내 어깨에 기대어 실컷 울어봐
나는 너의 가장 친한 친구이고 의지할 사람이잖아
넌 항상 자신 만만했었는데 지금 보니 너의 날개가 부러졌구나
나는 우리가 같이 그 날개를 이을 수 있기를 바래

 

치키티타, 너와 내가 울지만
태양은 여전히 하늘에 있고 바로 너의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지
다시한번 너의 노래를 들려주지 않겠니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노래를 불러보렴, 치키티타

 

그래, 벽은 하염없이 무너져 내렸고
너의 사랑은 꺼진 촛불이구나.
모든 것이 떠나갔고 감당하기엔 너무 힘 든 것같아
치키티타,  내게 진실을 말해 줘.
넌 그것을 부정할 수 없어.
넌 너무도 슬프고 말이 없구나

 

 

 

 

나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1년의 근무를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모든 희망을 버리기로 했고,

지금도 희망이라는 단어는 내가 혐오하는 단어 중의 하나이다.

여행의 의미가 목적지로 가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를 떠나는데 있듯이

희망의 의미는, 역설적이게도, 희망을 가지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버리는데 있다.

그래서 나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고, 희망을 가질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욕망은 가지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희망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이다.

알고보면 희망이 바로 욕망이다.

욕망이 당의를 입어면 희망이 된다.

현재의 욕망을 버리고 새로이 미래의 욕망을 가지는 것이 바로 희망이다.

 

사우디에서 나는 구름을 뚫고 올라서서  항상 머리위에 빛나는 태양 아래에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 구름이라는 것이 바로 인간의 마음이다. 좋은 마음, 나쁜 마음 구분할 필요가 없다. 마음은 모두 구름이다.

그 다짐 또한 구름이다.

그 구름 아래가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밖에는 비가 내리는데도 새들이 지저귀고 있다. 그것은 새들의 노래소리인가, 새들의 울음소리인가.

다행히 텐트안은 춥지는 않다. 추우면 옷을 껴입어서 비좁은 텐트안에서 불편할 뿐만아니라 침낭속에 오랫동안 들어가 있으면 습기가 찰 것이다.

비오는 날 텐트안에 같혀 있으면 제일 두려운 것이 빗물이 스며드는 것과 습기가 차는 것이다.잠에 좀 지쳐서 시각을 보니 오후 2시가 가까워 온다.

'점심밥이나 해먹자.' 점심을 먹고 누우니 또 한 숨 잔다.

눈을 떠보니 일단 비는 그쳤고 시각은 오후 4시 20분이다.  

 

음악을 틀어 보니 라로차가 연주하는 알베니즈의 곡이다. 재즈풍인데 나는 재즈 체질이 아니라서 재즈는 좋아하지 않는데 이 정도의 재즈라면 들을만 하다.

오늘 같이 비내리는 텐트속에서 헐렁하게 듣기에는 제격인 매우 자유스런 느낌을 주는 곡이다.

음악을 한 참 듣다가 계속 누워 있을 수만 없어서 리셉션에 가서 쿠키 한 봉지와 250ml짜리 와인 한병을 사들고 나왔다. 3.5유로. 싸다.

하늘을 쳐다 보니 여전히 구름이 가득하다.

참새 비슷한 새들이 하늘을 헤엄치듯이 날고, 한국에서는 언제 보았는지 기억에도 없는 제비가 하늘을 가르고 있다.

그 많던 제비는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잔디 밭에서 배회하는 까치는 그 모습이 한국의 까치 그대로이다.

내 텐트 앞으로 걸어가는데 비둘기보다 약간 작고 물닭처럼 깃털이 새가맣고 부리가 유달리 노랑색인 놈이 나에게 빠른 걸음으로 돌진한다.

간큰 놈이다. 할 수 없이 약간 비켜서 주니까 내 코앞 30cm정도 앞을 돌진해 간다.

안하무인격으로 매우 건방진 놈이다. 그러나 오늘은 기분좋게 봐준다.

 

다시 텐트에 돌아와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와인을 홀짝이며 듣는 바하의 플루트 3중주가 좋다.

정다운 플루트 소리와 부드러운 챌로소리가  잘 어울려서 내 마음을 쓰다덤어 준다.

이렇게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아내가 해주는 밥이나 먹고 있으면 될 텐데 내가 왜 사서 고생하려드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음악과 와인이 있으니 오늘을 공쳐도 억울하지는 않다.

 


5월 11일(토) 흐림

엊저녁 9시 쯤에 취침을 했는데 아침에 눈을 떠보니 6시다. 텐트 바깥으로 내다보니 하늘은 오늘도 구름이 가득하다.

간밤에 캠핑장을 둘러보았는데 캠핑트레일러의 대부분이 전등불이 켜져 있지 않는 것을 보면 대부분이 대여용인 것 같다.

 

오늘은 마이센 가는 날이다.

마이센은 드레스덴 북서쪽 30km 지점에 위치하고, 인구가 3만도 채 되지 않는 조그만 도시인데, 도자기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최초로 백자기 생산에 성공했다고 한다. 마이센으로 가는 것은 순전히 그 유명한 마이센 도자기를 구경하기 위한 것이다.

도자기 그릇이 아니고 도자기 인형에 관심이 있다.

거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예전에 스페인을 여행할 때 말라가에서 도자기 인형을 보았는데 무척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인형 하나를 사고 싶었으나 20여만원이나 하는 금액이 부담스러운데다가 여행중이라 들고 다닐 수 없었기 때문에 그만둔 적이 있다.

이번에도 구경은 가지만 구입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스페인보다는 독일 물가가 훨씬 높을 테니까.

갈 때는 유람선을 타고 되돌아올 때는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9시 25분 출발이어서 선착장에 도착하고  보니 시간이 조금 남아서 극장광장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내려 오니 많은 승객들이 와 있었다.

모두다 관광객인 듯하다.

요즘 처럼  바쁜 시대에 느림보 배를 이용할 사람은 관광객들 뿐일 것이다. 마이센까지 요금은 13.5유로이고 자전거는 무료란다.

선진국에서는 거의 모두가 자전거  운임은 별도로 받는데 공짜라니 반갑다. 배의 추진은 스크류식이 아니고 수차식이다.

관광선이라서 그런가 보다. 배가 달리는 속도만큼 바람이 불어와서 좀 춥다. 자전거라이딩용 판초우의를 뒤집어 썼더니 추위가 가신다.

 

 

 

마이센에서 캠핑장까지는 36km

 

 

 

캠핑장에서 선착장으로

 

그 건방졌던 놈이 텐트 너머로 보인다.

 

 

 

 

 

선착장에서 시간 남아서 극장광장에 다시 와보았다.

 

 

 

 

첫 유럽 여행에서 서구인들의 돌조각 솜씨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우리의 목조각보다 더 정교하니까.

그러나 그런 그들도 자신들의 미술에 싫증이 났고

19세기 말에 들어서서 투박한 아프리카의 원시미술에 눈을 돌렸다.

마티스와 피카소가 그 예이다.

 

 

선착장

 

 

 

 

 

 

 

 

 

 

 

마이센까지 편도 13.5유로, 자전거는 무료

승객은 모두 관광객이다.

 

엘바강을 따라서 마이센으로

 

수차에 의해서 추진력을 얻는 것이 특하다.

 

 

 

 

드레스덴의 마리엔 다리

마이센은 하류쪽이다.

 

 

 

 

 

 

 

 

 

 

 

 

 

 

 

 

 

 

 

 

 

 

 

 

 

 

 

 

 

 

 

 

 

 

 

 

 

 

 

 

 

 

 

 

 

 

 

 

 

 

 

 

 

 

 

 

 

 

 

 

 

 

 

 

 

 

 

 

 

 

 

 

 

 

 

 

 

 

 

 

 

 

 

 

 

 

 

바람 때문에 추워서 자전거라이딩용 우의를 입었다.

 

 

 

 

 

 

 

 

 

 

 

 

 

 

 

 

 

 

 

 

 

 

 

 

 

 

 

 

 

 

 

 

 

 

 

 

 

 

나는 유럽소 하면 검은색에 흰 점이 있는 홀시타인을 연상하는데 그런 소는 보이지 않았다.

옛날에는 유럽에도 들소가 있었는데 멸종하고 말았다 한다.

 

 

 

 

 

 

생명의 진화를 보면 신비롭다.

생명은 단순한 것으로부터 복잡한것으로 진화한다.

어떤 진화의 의지를 배제하고서는 그런 진화를 이해할 길이 없다.

의지를 배제하고서 진화의 원리를 설명하는 모든 이론을 나는 신뢰할 수 없다.

우주창조의 어떤 주체가 있다는 창조론은 더욱 신뢰할 수 없다.

모든 물질은 인간의 이성으로서는 알 수 없는 어떤 미세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런 미세한 의지가 바다를 이루어서 진화를 진행시킨다고 본다.

마치 물분자 하나의 하나의 의지가 모여서 결국 강물이 거대한 강을 만들어 내듯이.

그런 의지의 전체를 신이라 불러도 좋겠다.

그런 미세한 의지를 가진 물질의 전체, 그것이 곧 전우주이므로 결국은 우주 전체가 신이라는 말과 같다.

 

 

 

 

 

 

 

 

 

 

 

 

 

 

 

 

 

 

 

강변에 자전거 여행자가 많이 보인다.

 

 

 

 

 

 

 

 

 

천천히 커피 한 잔을 마시는 동안에 마이센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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