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Europe

라이프찌히3-전쟁기념비, 멘델스죤의 집(Leipzig)

박희욱 2013. 8. 17. 17:39

 

 

 

5월 14일(화) 맑았다가 흐렸다가를 반복하는 변덕스런 날씨

 

한밤중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다가 하늘을 쳐다보니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아, 그리고 북극성이 눈에 들어온다.

하늘의 별을 쳐다보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우습게도 지난 여름에 알래스카에 갔을 때 보고 처음 보는 것 같다.

 

요즘 한국의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별을 볼 수 있는 날이 있을까.

우리는 달콤한 문명의 편리를 즐기고 있는지 모르지만 별빛을 잃었다.

예전에 나는 아메리카 몬타나를 자전거 여행할 때 본 밤하늘을 잊을 수가 없다.

더 이상 비집고 별을 쑤셔박을 자리가 없는 밤하늘이었다.

그런 하늘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어느 여름날 밤

 

문득,

 

지나간 옛 여름날 밤이 생각난다.

 

모두가 배고팠던 시절,

 

마당바닥 멍석위에1 둘러앉아 모깃불 연기 마시며,

 

잿피가루 미꾸라지 국물에 밥을 말아서

 

두 사발을 훌쩍 비우고도 조금 더 먹고,

 

어스름이 깃드는 시냇가 방천에 모여 앉아

 

설렁대는 밤바람 가슴 가득 안으며,

 

하늘 촘촘히 빛나는 별들 사이로

 

갸늘히 흐르는 은빛 물길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때가 생각난다

 

언제쯤이나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눈을 감아야 하는 그날이 와야만 하는가.

 

 

캠핑장에서 라이프찌히 전쟁기념비로 가는 길

 

오늘은 느긋하게 라이프찌히 중심부에서 동남쪽으로 4.5km,

그러니까 캠핑장에서 12km 정도 떨어진 라이프찌히 전쟁기념비쪽으로 페달을 밟았다.

잠시 마음을 놓는 바람에 길을 잘 못 들어서서 조금 헤매고 말았다.

덕분에 키가 높은 나무 숲과 그 바닥에 하얀 꽃들이 만발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뉴질랜드 로토루아에서 만났던 어떤 아주머니의 말이 생각난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길을 잃고서 헤맸던 이야기를 하자,

그렇게 해봐야 진짜 여행이지 계획대로만 다닌다면 그게 답사지 무슨 여행이겠느냐고 했다.

옳은 말이고 우리의 삶도 여행과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나는 인생을 계획대로만 살려고 했던 사람들 중에 하나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계획이 빗나갈까봐 항상 전전긍긍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수로를 따라서 흐르는 물은 안전하다. 옆으로 샐 염려도 없고, 넘쳐서 범람할 염려도 없이 항상 일정하게 흐른다.

그것은 죽음의 흐름이다.

 

강물은 그렇지가 않다.

항상 변하면서 생동적으로 흐른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바다에 이른다.

수로를 흐르는 물은 바다에 이르지 못하고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만다.

 

 

        인생을 다시 산다면

 

                                                                    나딘 스테어(85세, 미국 켄터키 거주)

 

다음번에는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긴장을 풀고 몸을 부드럽게 하리라
이번 인생보다 더 우둔해지리라
가능한 한 매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보다 많은 기회를 붙잡으리라

여행을 더 많이 다니고 석양을 더 자주 구경하리라
산에도 더욱 자주 가고 강물에서 수영도 많이 하리라
아이스크림은 많이 먹되 콩요리는 덜 먹으리라
실제적인 고통은 많이 겪을 것이나
상상 속의 고통은 가능한 한 피하리라

보라, 나는 시간 시간을, 하루 하루를
의미있고 분별있게 살아온 사람 중의 하나이다
아, 나는 많은 순간들을 맞았으나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나의 순간들을 더 많이 가지리라
사실은 그러한 순간들 외에는 다른 의미없는
시간들을 갖지 않도록 애쓰리라
오랜 세월을 앞에 두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대신
이 순간만을 맞으면서 살아가리라

나는 지금까지 체온계와 보온물병, 레인코트, 우산이 없이는
어느곳에도 갈 수 없는 그런 무리중의 하나였다
이제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이보다
장비를 간편하게 갖추고 여행길에 나서리라

내가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초봄부터 신발을 벗어던지고
늦가을까지 맨발로 지내리라
준비되지 않은 춤추는 장소에도 자주 나가리라
회전목마도 자주 타리라
데이지 꽃에도 눈길을 자주 주리라

   

 

 

 

 

 

 

 

 

여기도 일정한 간격으로 수중보를 설치하여 저수지를 만들었다.

 

 

 

 

 

 

 

 

 

 

 

 

 

 

 

 

 

 

 

산마늘인가?

마늘 냄새가 난다.

 

 

 

 

 

 

 

 

전쟁기념비

 

이 기념비는 1813년에 라이프찌히에 있었던 있었던 나폴레옹군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8만여명의 병사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워진 것이라 한다.

우리말로 하면 위령탑 쯤 되겠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과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 연합군과 마딱뜨린 전투에서 전장에 널부러진 시체는 10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1912년에 완공되었으니까 한 창 군국주의가 창궐할 때 건축된 것으로 보이며, 히틀러가 좋아했슴직 하다. 높이는 91m.

 

 

 

 

 

 

 

 

 

 

 

 

 

 

 

 

 

 

 

 

 

 

 

 

 

 

 

 

 

 

 

 

 

 

 

 

 

 

 

 

 

 

 

 

 

 

 

 

 

 

 

 

 

 

 

탑의 전망대에서 본 풍경

 

 

 

 

 

멀리 라이프찌히 대학의 빌딩이 보인다.

 

 

 

 

 

 

 

 

 

 

 

 

 

 

 

 

 

 

 

 

 

 

 

 

 

 

 

 

 

 

 

 

 

58m까지는 엘리베이트로 올라가고 그 이상은 겨우 1명이 올라 갈 수 있는 하는 이런 비좁은 나선 계단의 연속이다.

말을 하지 말고, 머리를 쳐들지 말고, 조신하게 올라가라는 의도이다.

 

이 계단이 좁은 것은 죽은 자의 영혼을 만나러가기 위한 것이다.

영혼을 만날 때는 만나는 사람도 영혼이 되어야만 하며,

영혼이 되기 위해서는 홀로 침묵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옷을 껴입은 것을 보니 이때는 제법 추웠던 모양이다.

 

 

 

 

공사기간은 1898년~1912년

 

 

 

 

이렇게 홀로 가라, 무소의 뿔처럼

 

 

 

 

 

홀로는 전체이다.

 

 

 

 

 

 

 

 

 

 

 

 

 

부속 박물관

 

 

 

 

 

 

 

 

 

 

 

전투장면을 재현한 것

 

 

 

 

 

 

 

 

 

나폴레옹

이 미친자는 평생을 하루에 3시간 밖에 자지 않고 설쳐댔으니

위통으로 고생을 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유럽을 통일해서 어쩌겠다는 것이었을까?

세계를 하나로 통일하면 어떻게 될까?

그가 미친 것은 153cm의 단신 컴플렉스에 온 것이 아닐까?

프랑스 파리에는 그의 거대한 기념관이 있다.

 

유럽을 황제들의 손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겠다고 하던 자가

교황의 손으로부터 황제의 관을 빼앗아 스스로 집어쓸 때는 기분이 어떠했을까?

기분이 째졌을까? ㅋ

 

수많은 사람을 사지에 몰아넣고 종래에는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되어서 자식도 없이 홀로 외로이 죽어가느니

코르시카 섬에서 양이나 치면서 아들 낳고, 딸 낳고 그냥 그렇게 살았으면 될 것을!

 

 

 

 

이 위령탑을 1912에 완공하고나서 1918년에 1차세계대전을 일으켜서 패망한 것을 보면

1813년의 8만여명이나 전사한 전쟁의 비참함도 배우지 못하고

이 탑도 위령탑이 아니라 전의를 불태우는 용광로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멘델스죤의 집 

 

멘델스죤의 집은 이 건물의 2층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