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Europe

라이프찌히4-슈만의 집, 바흐 박물관(Leipzig)

박희욱 2013. 8. 17. 17:53

 

 

 

 

 

터키 케밥집

 

 

 

도네르 케밥 3유로, 콜라 1유로

무척 싸서 저녁밥으로 도네르 케밥을 하나 더 준비했다.

우리나라라면 1만원 이상은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싼 것을 보면 독일 농산물이 저렴한 모양이다.

웬만한 사람 2인분이다. 이것을 먹고 나니 저녁때가 되어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독일에서는 케밥집만 찾을 수 있으면 먹는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케밥은 제값을 못받는 것 같다.

양과 질에서 서브웨이에 뒤지지 않는데 값은 반도 채 되지 않는다.

무엇이나 싸구려로 한 번 인식이 되면 헤어나지를 못한다.

 

 

 

 

초등학교 교정

 

 

 

슈만의 집

 

이 집은 로버트 슈만이 클라라와 결혼하여 1840년부터 1844년 까지 거주한 집이다.

이 기간에 그의 교향곡 제1번 봄을 비롯하여 많은 작품을 썼으며,

총 8명의 자녀 중에서 첫 2명을 여기서 낳으면서 그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보낸 곳이다.

 

 

슈만의 집은 이 도로의 오른쪽에 있다.

 

 

 

이 건물은 1838년에 건축된것이다.

 

 

 

 

슈만의 집은 초등학교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오후 2시가 될 때까지 잠시 기다려야 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슈만도 바흐와 베토벤을 흠모한 모양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슈만 같은 사람이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강물에 투신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것은 의아스럽다.

아름다운 음악과 음악의 동료인 이쁜 아내가 있고 자식이 있는 사람이지 않은가.

인간의 운명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초등학생들의 가방이 꽤 커 보인다.

 

 

 

이쁜이

슈만의 집은 교실과 통하게 되어 있었다.

 

 

 

 

클라라와 슈만

 

 

 

 

관리인 Ingrid Kathe

내가 음악가 중에서 누구를 제일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슈만!

내가 괜히 물어본 것이다.

다시 바그너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벌레 앂은 표정을 짓는다.

이것은 잘 물어 보았다. ㅋ

바그네리안들 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음악가 중에서 불쾌한 유일한 사람이다.

딴 것은 시비를 걸 필요는 없겠지만, 일단 나의 귀를 괴롭히는 사람이니까.

그렇거나 말거나 라이프찌히에는 5월 16일부터 5월 26일까지 바그너 페스티벌이 열린다.

 

 

 

인증샷

 

 

 

 

멘델스죤의 집과 마찬가지로 방문객은 별로 없어서 한적하였다.

 

 

 

 

 

 

 

 

 

헬멧 쓴 사람이 자전거를 세우고 지도를 보고 있노라면 측은한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자청해서 길을 가르켜 주려는 사람이 많았다.

분단과 통일의 역사박물관을 가르켜 주면서 니콜라스 교회와 토마스 교회를 꼭 보란다.

 

 

 

분단과 통일의 역사박물관

동독에서의 독재와 저항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

이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다. 아니다. 말만 되는 소리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불평등하게 태어났다.

 

'인간은 천부의 인권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것도 말도  안되는 소리다. 아니다. 이것도 말만 되는 소리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인권을 빼앗기고 낙원에서 추방당하였다.

 

세상에는 말만 되는 소리를 믿고 사는 사람이 많다.

말만 되는 소리는 달콤하기 때문이다.

그런 말을 믿고 살다가는 망하는 수 밖에 없다.

 

평등하지 않은 인간들을 평등하게 다스리려고  하면

평등을 유지시키는 강제적인 권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평등을 지향하는 공산주의 사회는 한결같이 독재로 전락하였다.

 

 

박물관

 

 

 

 

고통 받는 인민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프롤레타리아가  독재를 하겠다고 나섰으나 거꾸로 독재를 당하고 말았다. ㅋ

마르크스는 평생 자기손으로 돈 한 푼 제대로 벌어 보지  못하고 남에게 신세지면서 산 빈털털이 프롤레타리아였다.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생각하는 것 밖에 없었고

그 생각은 멋진 상상이었다.

생각은 자유였으니까.

 

 

 

히틀러의 부하들의 손에 죽은 인명과 칼 마르크스의 제자들의 손에 죽은 인명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많을까?

칼 마르크스는 자본론이라는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써는데 평생을 보냈다.

나는 인류역사상 칼 마르크스만한 바보를 알지 못한다.

자본주의란 그냥 이익을 취하려는 인간의 본성에 따른 경제활동일 뿐이다.

그러한 것을 사상이라고 보고 이론적으로 설명하려고 한 그 발상이 너무 어리석다.

공산주의는 사상이다.

그것은 생각에 의한, 그러므로 실재가 아닌 상상이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200만년 동안이나 진화해온 인간의 심성을 무시한 한낱 백일몽 같은 사상이었다.

마르크스가 추구한 사상은 두더쥐 잡기 놀이에서 두더쥐를 모두 잡겠다는 발상보다 더 어리석어서,

 마치 배아픈데 아까징끼(머큐롬)를 발라서 치료하겠다는 의사만큼이나 어리석다.

 

사회라는 어떤 객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란 인간간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도외시한 사회개혁이란 불가능하다.

 

생각이란 것은 빙산의 일각보다 더 표피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상은 물론이거니와 사상이나 이념으로서 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고

또, 인류역사상 그런 예는 없었다.

 

 

 

 

공산주의는 인간이 사는 땅에 이상을 실현하려고 하면

그 이상이 지옥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으켜 주었다.

하늘의 별을 쳐다보고 가다가는 발밑의 우물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역시 깊숙한 베이스의 음색이 외로운 여행자를 위무해 준다.

분단된 조국을 생각하니 마음이 울적한데다가 고국을 떠난 이국땅에서

노래로 연명해야 하는 이들의 처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시려서 4유로를 쾌척하였다.

 

 

 

 

토마스 교회 앞의 광장

 

 

 

바흐 박물관

 

어제도 바흐 박물관을 찾았으나 월요일이라 휴관이어서 오늘 다시 방문한 것인데

볼 것은 없으면서 8유로 입장료가 비싸다. 물론 여기서 무엇을 구경하거나 새로운 바흐에 관한 정보를 얻어러 온 것은 아니다.

단지 바흐의 희미한 숨결이라도 느껴볼까 해서다.

 

노란색 글자가 바흐 박물관 간판인 셈이다.

독일에서는 언제나 이런 식이어서 바로 곁에 두고도 찾는다고 두리번 거리는 수가 많다.

 

우리나라는 간판과 대문문화인데 반하여 북유럽에는 간판과 대문이 없다.

우리의 문화는 체면문화 즉 페이스문화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간판과 대문을 크게 만드느라고 삶을 낭비하는데 이곳 사람은 우리보다는 삶의 낭비가 적은 것 같다.

서양인의 얼굴은 좁고, 동양인의 얼굴이 넓은 것도 페이스문화 때문인가? ㅋ

 

 

 

 

윗 사진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런 중정이 나온다.

 

 

 

토마스 교회 앞의 바흐상

 

 

 

 

진정한 위인은 지금 현재 우리들에게 영속적인 감동을 주는 사람이다.

 

 

 

 

 

 

 

 

 

 

 

 

 

 

 

 

 

 

 

 

 

 

 

 

 

 

 

 

 

 

토마스 교회 옆 광장에서 휴식을 취하는 관광객들

 

 

 

라이프찌히는 음악에 관심이 없다면 굳이 방문할 필요가 없는 듯하다.

 

 

시내에서 캠핑장 가는 길

 

 

 

 

 

 

 

테니스는 가장 좋은 스포츠 중의 하나이다.그 장점을 열거해보면,

운동을 하기에 편리하고 용이하다는 것(안타깝게도 테니스장이 많이 줄어들었다), 비용도 적게 든다는 것, 즐기면서 할 수 있다는 것,

옥외 운동의 하나인 것, 나이에 관계없이 할 수 있다는 것, 휴식을 취하면서 할 수 있고, 사교적이다는 것, 등이며 단점은,

조금 과격하게 하거나 자세가 바르지 못하면 부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것과 기본자세를 익히는데 어느 정도의 노력과 렛슨비를 들여야 한다는 것 정도이다.

 

 

 

 

 

나는 오십견이 온 사이에 mtb로 전향하고 말았는데

20년 이상 즐긴 스포츠를 본의 아니게 버린 것이 무척 아쉽다.

비록 테니스를 떠났지만 테니스의  발전을 빌고 싶다.

 

 

 

 

축구를 즐기는 시민들

독일 축구는 이런 잔디밭에서 자라서 거목이 되는 모양이다.

 

 

 

열심히 하는 것은 좋은데 대한민국의  양궁을 넘어서지는 말기를!

 

 

 

 

돌아온 캠핑장

 

오트바이 여행자들을 부러워한 적은 없고, 오히려 불쌍하게 느낀 적은 있다.

그들도 나를 보는 느낌이 마찬가지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나를 지나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주는 오트바이족들이 많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