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꼬마 친구 승연이

박희욱 2011. 8. 18. 22:26

저녁 때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오니 윗층에 사는 승연이가 현관으로부터 달려 나온다.

달려 나온다고 해봤자 아장아장 걷는 이제 겨우 3살박이 아기나 다름없다.

 

뒤따라 나오던 승연이 할아버지가 말했다.

"조녀석, 벌써부터 말을 안듣는다!"

내가 말했다.

"승연이 안녕?"

아직 대답도 할 줄 모르는 나이다.

" 할아버지가 이제는 승연이 말을 안듣는 모양이구나! 그치?"

할아버지나 손자나 서로 말 안듣기는 피차일반이다.

 

승연이는 태어나자 마자 서울에 사는 엄마, 아빠와 떨어져서

부산 수영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산다.

승연이 엄마는 대학에서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다음,

유아교육학과에 편입학 졸업을 하고,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서울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어서 승연이를 돌보고 키울 시간이 없다.

 

승연이 엄마는 처녀시절 대학을 1등으로 졸업한 재원이었다.

오래전의 이야기이지만,  대학원 진학을 위하여 사귀어 오던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대학 선배인 나는 그녀에게 정색을 하고 말했다.

"행복은 단순한 거야, 네가 바람결에 흔들리는 한갖 나뭇잎세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아무곳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없어!"

결국, 내 말은 그녀에게 아무 소용이 없었고,

차라리 1등한 그녀에게 격려를 해주는 것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승연이 엄마는 유아교육학 박사학위를 받게 되면,

유아를 키워본 경험도 없으면서 박사랍시고 유아교욱에 대해서 뭔가를 아는 척 하겠지.

그래, 그건 아무래도 좋지만,

더 큰 행복을 위하여 지금의 행복을 유보하고 있는 승연이 엄마는 과연 미래에 그만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아무튼 승연이 엄마는 또 이렇게 아들 승연이와도 헤어져 살고 있는 것이다.

 

승연이는 이제 두 손을 배에 갖다대고 공손히 머리를 숙이는 백화점식 인사법을 배웠다.

하루만이라도 빌려서 데리고 놀 수 있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승연이가 좋아하는 마이구미를 호주머니에 항상 넣고 다녀야겠다.

언제 다시 마주칠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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