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필요한 책이라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박희욱 2013. 3. 13. 11:43

명곤에게!

 

너의 '필요한 책이라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라는 물음에 생각나는 대로 답해 보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독서나 여행을 자신의 취미로 삼고 싶어하지만 실행하는 것은 그리 쉽지가 않다.

며칠 어디를 다녀왔다고 해서 여행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 진정한 여행은 실로 힘들고, 오랜동안의 홀로의 고독을 버티어 내야 하기 때문이지.

독서도 마찬가지로 대중소설이나, 환타지소설, 무협소설이나 처세술 같은 것들을 읽으면서 독서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진정한 독서는 여행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할 수 있지.

 

독서의 목저과 효용은 다양한 것이기 때문에 섣불리 독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곤란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재미를 위한 독서는 삼가는 것이 좋다.

큰아버지가 남들보다 좋게 타고난 성향이 있다면, 그것은 재미에 쉽게 빨려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흔히들 독서는 교양을 위한 것이라거나, 마음의 양식이라고들 말하지. 우리는 교양이라면 품위라는 말을 연상하게 되지만 나에게는 교양이란 것은 살아가는데 있어서 사용하는 재료와 같은 것이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냉장고에 다양한 재료가 있어야 여러가지 다양한 요리를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런 재료를 마련해서 저장하는 것이 교양을 위한 독서라 할 수 있겠지. 이러한 교양을 위한 독서는 평생을 통하여 가능한 것이 아니고 젊은 시절에 유효한 것이며,  나이가 들수록 별로 의미가 없어지지. 나 같은 경우에는 교양을 위한 독서는 이제 필요 없단다.

 

40대 중반에 들어서서 접하게 된 라즈니쉬를 읽기 전에 내가 읽었던 책 중에서 지금까지 인상에 깊이 남아 있는 책은 그리 많지가 않다.

젊은 날에 나에게 큰 인상을 남겼던 작가는 독일의 헤르만 헷세였고,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 읽었던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과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두 책은 무척 이해가 어려웠던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부터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어떤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 무렵에 읽었던 에리히 프롬의 '존재냐 소유냐'는 나의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며, 어느 제자에게도 읽기를 권했던 적이 있었다. 마치 동화 같은 미하엘 엔데의 '모모' 또한 방황하던 나에게는 대단한 감동을 받았던 책이었지.

 

나는 소설은 거의 읽지 않았다. 시간 낭비라고 여겼기 때문이지. 널리 알려진 세계문학은 조금 읽었다고는 할 수 있지만 큰 감동을 받았던 적은 그리 많지 않았지. 아마도 좋은 번역이 못되서 그러했으리라고 여겨진다. 좋은 번역을 하려면 그 언어를 거의  모국어 수준으로 할 수 있어야 하고, 작가의 정신세계에 근접하여야만 올바른 번역을 할 수 있기 때문인데 과거에는 해당언어를 모국어처럼 할 수 있는 사람조차도 드물었을 거야. 게다가 그때는 원어를 영어로 번역하고, 영어를 일본어로 번역한 것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용의  왜곡을 피할 수 없었겠지. 요즘은 많이 나아졌을까?

 

수필로서는 법정스님의 책이 세계최고라고 해도 나는 동의할 수 있다. 지나간 일이기는 하지만,  생존한 한국인으로서는 내가 존경할 수 있는유일한 분이었지.

내가 많이 읽었던 책은 여행기란다. 그것은 내가 여행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별로 필요없을 것 같다.

 

진정한 독서, 정말로 필요한 독서는 세상의 지식과 정보를 모으는데 있는 것이 아니란다. 물론 너에게는 그런 책들이 당분간 필요하겠지만.

진정으로 필요한 책은 자신을 외부세계로부터 자신의 내면 세계로 방향을 돌려세우는 독서라 할 수 있지. 그리하여 자신이 끌어모은 모든 개념과 관념을 씻어내어서 법정스님이 말한 텅빈 충만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자신의 머리에 무엇을 채우는 독서, 이것은 피해야 할 것이다.

비근한 예로, 도올 김용옥은 가득찬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듯이 밷어 내지만 나에게는 소음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는 매우 유식하지만 대단히 무지하다.

 

오래전에 우연히 부산 범어사 책방에서 접하게 된 라즈니쉬의 '금강경해설'은 나에게는 크다란 충격이었다. 나의 믿음과는 정반대의 것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와의 만남은 나에게는 행운이었지. 그래서 그 책을 너의 삼촌들에게 부쳐보냈으나 나와 같은 감동은 아무도 받지 못한 것 같다. 한글로 번역된 120여권이 넘는 그의 모든 저작을 섭렵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더 나아가서 마하리쉬, 푼자, 크리쉬나무르티, 마하라지 등의 모든 저작을 탐독하였다. 그러나 크리쉬나무르티의 책들은 나에게 맞지 않았지.

 

그런 책들을 읽고 나니까 다른 모든 책들은 저절로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쓸데 없는 잡문으로 보였던 것이지, 물론 지금도 나의 취미와 연관된 책들은 가끔 읽기도 하지만. 나는 그리 많이 독서는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십여 박스 이상의 책들을 내다버렸다. 그러나 라즈니쉬를 비롯한 인도 각자들의 책은 죽을 때까지 나의 서가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책들을 네 형 동현이는 읽지 않을 것 같아 보이지만 나의 손자에게라도 물려주고 싶다.

 

그러나 그들의 저작을 지금의 네게 권하고 싶지는 않다. 결코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 같아서이다. 너도 나와 같이 40을 넘기면 접해 보기  바란다. 사람에 따라서는 독이 될 수 있는 책이다. 의약과 마차가지로 약효가 나는 사람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도리어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재로 히틀러  같은 사람에게는 니체의 저작을 통한 초인사상이 독이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독서도 징금다리와 같아서 하나씩 밟지 않고 건너 뛰다가는 물에 빠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볼테르는 좋은 책의 50%는 독자가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듣고 보니 당연한 말이다. 문장을 읽을 수 있다고 해서 모든 책을 잃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 책 뿐이겠는가. 눈이있다고 해서 아무나 명화를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귀가 있다고 해서 위대한 걸작들을 모두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책이라고 해서 다른 것이 아니다.

 

지금 나의 서가를 둘러보고서 몇 권의 책을 추천한다.

류시화의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베이컨의 수상록",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아메리카 인디언" 등이다.

마하라지의 "이이앰댓"과 "의식을 넘어서"는 아직 네게 추천할 수 없다.

"의식을 넘어서"는 아직도 가끔 읽어 보고 있는데, 수많은 책들 중에서 하나만 간직하라고 한다면 바로 이 책이다.

 

네게 부친 "존재냐 소유나"는 본래 동현이와 한솔이, 그리고 네게 주려고 3권을 산 것이다. 그러나 동현이와 한솔이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가지고 있던 것인데, 너의 아버지에게 보내려고 하였으나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결국 네게 보낸다. 모든 소유적인 가치관과 생활태도는 버려야 할 것이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네가 바둑을 좋아하는데, 그렇게 권하고 싶은 취미는 아니라고 보아진다. 물론 나도 바둑만큼 재미있는 취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바둑보다 더 좋은 것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재미있고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생각의 세계에서 놀지 않는 것이 좋다. 바둑도 그러한 생각의 세계에 속한다. 독서도 그러한 바둑과 같은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바둑도 적당한 실력으로써 다른 사람과의 친교의 수단으로 사용하면 나쁠 것이 없다. 그러므로 결코 인터넷으로 불특정 다수인과는 바둑을 두지 말기를 바란다. 바둑을 통하여 항상 승패에 초연하면서 위기에 평정심을 유지하는 힘과 집중력을 기르는 데 이용한다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바둑보다는 독서가 낫겠지.

 

생각해보면 나는 군입대전에 보낸 2년은 철없이 시간을 낭비한 감이 든다. 좋게 생각하면 공부에만 매달렸던 고등학교시절을 지나서 그러한 낭비도 필요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용돈조차 부족했던 시절이라 하고 싶었던 것도 할 수 있는 형편이 못 되었지. 3학년에 복한 이후에는 취업준비와 몇 개의 기사시험에 몰두하다시피 했어야 했고. 아무튼 너는 학창시절에 많은 것을 경험해서 미래의 삶에 자양분이 될 수 있도록 하기 바란다.

이 기회에 너에게 취미를 꼭 하나만 추천을 한다면 클래식 음악을 추천하고 싶다. 삶의 영원한 동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클래식에 대한 취향도 천성적인 것이라서 아무에게나 권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구나.

 

오늘은 이만하자꾸나. 언제라도 의문이 있으면 질문하기 바란다.

안녕!

 

                                                                                                                                                                                             2013년 3월 13일 白父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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