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Europe

에필로그

박희욱 2013. 10. 30. 10:48

이번 여행을 계획해서 마무리하는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 1월 달에 항공권을 구입한 이후, 여행지를 선정하고, 그곳의 정보를 수집하고, 여행경로를 결정하는 등 모든 준비를 완료하는데 3개월  이상이 소요되었다. 돌이켜 보면 그 준비도 여행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했고 또 즐거움도 있었다. 나는 여행과 여행준비를 저울에 단다면 저울추는어느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행은 5월 3일에 출발하여 7월 31일에 귀국하는데까지 근 3개월,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 블로그에 사진을 올리고, 기록하였던 일기를 옮겨 적는데 3개월가까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그러니까 이번 여행과 관련하여 근 9개월의 시간을 보낸 셈이다.

 

나는 가끔 욕심이 없는 것처럼 말하지만 여행만큼은 욕심이 많은 모양이다. 사람들은 흔히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금강산도 식전경인 것 같다. 그렇게 욕심을 부려서 장기간의 여행을 계획하고서는 떠날 때는 군에 입대 하는 기분이고, 여행을 마칠 때는 군에서 제대하는 기분이다. 마치 음식을 많이 먹겠다고  잔뜩 접시에 담아 놓고서는 그것을 모두 뱃속에 집어 삼키느라고 곤욕을 치르는 꼴이다. 마라토너들은 무려 42.195km를 주파하겠다고 스스로 정해놓고서는 엄청난 고통을 겪는데, 나는 그런 마라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나도 그런 마라토너들과 다름 없는 꼴일지 모르겠다.

 

이번 여행은 아무 사고 없이, 거의 계획대로 무난히 끝낼 수 있었다.

 

기상조건도 예상을 빗나갔다고는 볼 수는 없었다. 독일에서는 5월까지는 예상보다는 기온도 낮고 흐린 날씨와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이 많아서 여행이 조금 불편하였다. 드레스덴, 브레멘, 함부르크 등지에서는 비 때문에 관광을 하지 못하고 하루를 텐트에서 보내야 했던 경우도 있었다. 노르웨이는 예상보다는 기상상태는 좋아서 추운 날씨도 별로 없었고 비 때문에 하루를 공치는 날은 없었다. 노르웨이를 떠나서는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는 날씨가 무척 좋아서  여행하기에는 안성마춤의 기상조건이었다. 다만, 스웨덴의 아비스코와 덴마크의 헬싱외르에서 비 때문에 하루를 공쳐야 했다. 노르웨이 여행은 5월 하순에 시작하여도 추위가 크게 문제될 것은 없을 듯 하다. 그래야 산들이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멋진 경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여행은 자연경관을 보는 것과 도시관광,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는데, 나의 주된 관심은 자연경관이었고, 도시관광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괴테가도의 라이프찌히에서 아이제나흐까지의 자전거 라이딩은 상당히 좋았으나 예상했던 독일의 흑림은 제대로 맛을 보지 못했다. 파란 보리밭과 노란 유체꽃밭이 아름다운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자전거로 주행한 루트는 모두 대체적으로 만족할 만한 풍광을 보여주었고, 예상대로 노르웨이의 자연경관은 단연 빼어나서 이곳을 보고나니 다른 곳은 큰 흥미거리가 되지 못했다.  노르웨이는 스위스와 함께 유럽의 국립공원이라 할 만했다. 다만, 노르웨이의 대표적 풍광으로 알려진 피오르드로부터는 큰 감흥을 받지 못했고, 오히려 노르웨이의 국가관광루트가 나에게는 무척 매력적이어서 이 구간은 신뢰하고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핀란드와 스웨덴의 자연경관에 대해서는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예상대로였다. 숲과 호수의 나라라고 하지만 산이 없는 숲과 호수는 무미건조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자전거 여행으로 유명한 발트해의 3 섬 올란드 섬, 고틀란드 섬, 보른홀름 섬 중에서 보른홀름 섬이 가장 좋았다. 올란드 섬은 별로였고, 고틀란드 섬은 괜찮았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멀리 동아시아의 구석에서 여기까지 자전거여행을 하러 올 정도의 훌률한 풍광을 자랑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도시관광은 주로 교회와 성당, 시청사, 성과 궁전, 그리고 박물관과 미술관 구경이다. 프랑스 파리를 방불케 하는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보고 나니 더 이상의 도시관광은 흥미가 없어져 버렸다. 러시아의 모스크바나 영국의 에딘버러와 같은 아직 방문하지 못한 도시가 있기는 하나 더 이상 방문할 계획은 없다.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다면 미술관 정도이다. 이번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관람했으므로 내가 아는 세계의 유명 미술관으로서 아직 관람을 한 적이 없는 미술관은 런던의 테이트미술관 정도이다.

 

이번에 방문한 도시 중에서 여행을 추천하고 싶은 곳은 독일의 드레스덴과 함부르크,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에스토니아의 탈린, 스웨덴의 스톡홀름, 그리고 덴마크의 코펜하겐 정도이다.

 

유럽에서는 장거리 자전거 여행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역시 텐트를 가지고 앞과 뒤의 패니어를 완전히 갖추어서 장거리 자전거여행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그런 사람들은 유럽에서도 조금 별난 사람들인 모양이지만 나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인 셈이다. 노르웨이의 로포텐 제도에서 자전거여행자들을 좀 만날 수 있었고, 자전거여행으로 유명한 발트해 3섬에서는 많은 자전거여행자를 볼 수 있었으나 그것은 내 기준의 장거리 자전거여행은 아니다. 그들은 대부분 여름휴가를 보내는 가족들이었다.

 

동일한 길을 여행한다고 하여도 그 여행방법에 따라 여행자가 경험하는 느낌은 큰 차이가 있으므로 같은 길을 여행한다고 할 수 없다. 특히 노르웨이 같은 곳에서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나는 캠핑카여행보다는 자전거여행을 택하겠다. 그런 여행방법으로는 결코 자전거여행에서 맛볼 수 있는 감동을 경험할 수 없다. 다만 별다른 경관을 볼 수 없는 넓은 대륙을 여행한다면 캠핑카가 더 좋을 것이지만.

 

이번 여행에서 캠핑장 이용은 만족할 만했다. 캠핑장은 충분히 많아서 캠핑사이트를 구하지 못하는 불상사는 없었다. 내가 경험한 최고의 캠핑장 편의시설을 보유한 뉴질랜드 만큼은 못해도 대체로 좋았다. 조금 아쉬운 점은 부엌은 모두 갖췄으나 식당이 없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부엌에서 취사를 하여 야외식탁이나 텐트에 돌아와서 식사를 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식사는 아침과 저녁은 거의 언제나 직접 밥을 지어서 먹었는데, 코펠로 밥짓는데는 전문가 수준이 되었다. 딱 한 번 약간 태웠는데 그 때의 쌀은 안량미(long grain)였다. 안량미는 우리 쌀보다 물을 많이 먹고 밥이 빨리 되었다. 안량미는 찰기가 전혀 없고 밥맛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잘못된 선입견이어서 굳이 안량미를 피할 것은 아니었다. 플라스틱 통에 담은 깐 세우가 구하기도 쉽고 가격도 저렴해서 매운탕을 많이 해먹었고, 가지고 간 건미역국도 많이 해먹었는데 이것 역시 장기간 보관성도 좋고, 중량도 작고, 조리도 간단해서 좋았다. 세우가 없을 때는 참치캔으로 매운탕을 했고, 매운탕에는 양파나 파, 마늘, 고추가루, 소금, 다시다 등을 넣어서 조리를 했다.

 

반찬은 가지고 간 5통의 낙지젖갈과 창란젖갈이 좋았다. 개는 것을 염려했으나 그런 일은 없었고, 여행의 중반을 넘어서자 약간 맛이 변했으나 그래도 먹을 만하였다. 그외에는 햄, 소세지, 고추절임, 오이피클 등으로 식시를 했는데 밥맛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나 스스로도 의아스러울 정도로 밥을 많이 먹었다. 점심은 빵과 햄, 소세지, 치즈, 버터 등으로 해결하고, 때때로 취사시간을 줄이려고 아침도 빵으로 해결하기도 했다. 그 외에는 종종 햄버거, 샌드위치, 핫도그, 서브웨이 등을 점심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내가 장기간의 여행을 할 수 있는 것도 해외에 나오면 아무것이나 잘 먹는 식성 때문인 것 같다. 여행중에 한국 음식이 생각나는 일은 거의 없다 싶이하다.

 

이번에도 여행의 말미에는 언제나 그러하듯이 더 이상 1개월 반 이상의 장기간 여행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를린에 도착했을 때는 긴 일정의 여행을 마친다는 것이 까마득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과연 조기 귀국하지 않고 끝마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여행도 군대생활처럼 일정의 반을 넘기면서 조금씩 마음의 여유를 찾게 된다. 그리하여 여행의 종반으로 접어들면 마치 제대특명을 기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제대말년과 동일한 여행말년 증세가 나타난다. 즉, 구경을 하고 싶은 욕구는 줄어들고 안전에 대한 조심성이 점점 높아간다.

 

미국과 캐나다 서부를 여행했던 첫 자전거여행에서는 앞만 보고 내달렸고, 그만큼 혼자서 눈물을 질금거릴 정도로 힘들어 했다. 그러던 것이 경력이 쌓이면서 점점 주행속도와 1일 주행거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나의 1일 최고주행거리가 217km이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100km를 넘은 적은 한 번 뿐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아무리  급경사 길이라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졌다. 천천히만 오르면 되니까.

 

귀국을 하고 보니 1개월 반 이상의 자전거여행은 더 이상 못하겠다는 생각이 어느새 점점 엷어져 버렸다. 유럽에는 아일랜드 - 스코틀랜드 - 아이슬란드 루트와 지중해의 발칸반도 - 이탈리아 - 프랑스의 프로방스 루트를 자전거여행을 하고 싶다. 이런 루트는 2개월 이상이 소요되고, 호주도 2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다음에 티벳 라싸 - 네팔 카트만두 루트도 자전거로 도전하고 싶다.

 

나는 여행 욕심이 많다. 남미여행, 네팔의 쿰부히말 트레킹, 미국서부의 존뮤어 트레일 트레킹, 미국동부의 블루리지 트레킹 등이 남아 있고, 아프리카의 나미비아 사막여행과 킬로만자로 등정은 과연 가능할지는 나도 모르겠다. 나는 체력이 닿는 한 여행을 계속할 것이고, 여행을 할 건강과 체력이 한계에 다다르면 그림붓을 들 것이고, 그것도 안되면 음악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여행과 군대생활 그리고 삶에는 서로 공통점이 있다.

여행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군대생활도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삶에도 탄생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

모든 것은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다.

그 공통점이란 시작보다는 종착점이 더 좋다는 것이다.

여명의 노을보다는 황혼의 노을이 더 아름답고 평화롭드시.

 

나는 그 황혼에서 영원한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날을 기대한다.

진리는 빛이 아니라 어둠이다.

 

마음 놓고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잘 성장한 아들딸과 이쁜 며느리, 그리고

긴 여행에서 돌아올 수 있는 집을 지켜주는 이쁠 것도 없는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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