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은 짐승을 사냥하거나 적을 무찌를 수 있고,
바늘은 옷을 깁거나 침을 놓을 수 있다
창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많으나
바늘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드물다
창은 세상으로부터 주목받거나 존중받을 받고, 필요시 타인을 위협할 수 있으나
바늘은 세상으로부터 외면받거나 무시당하고, 창으로부터 위협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고통과 불행은 바늘이 아니라 창이 되고자 함에 기인하며,
비록 창이 되는데 성공한다 해도, 또 창이 되는데 실패한다 해도 그렇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인간의 불행은 소외되지 않으려는 몸부림에 기인며,
그것은 타인을 사랑하고, 타인으로부터 사랑 받으려는 욕구(애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politikos) 동물이라고 했다.
그리스어 단어 politikos는 오히려 '정치적'으로 번역해도 좋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말 사회적(social)이라는 말과 정치적(political)이라는 말의 경계가 애매모호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덧붙여서,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없거나, 혹은 사회생활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만큼 자급자족이 가능한,
그래서 사회의 일원이 되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그는 짐승이거나 신이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신의 독생자 예수나, 천상천하유아독존의 붓다는 짐승인가 신인가?
그들은 모두 홀로임(독생독존)의 긴 터널을 통과한 사람이다.
나에게는 신과 짐승이 동급이다.
신은 선과 악의 이원성이 없는 일원성 즉, 전체이다
짐승도 선과 악이 없는 일원성의 존재이다
인간만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러써 낙원으로부터 추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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