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성리학과 주체사상

박희욱 2024. 3. 21. 11:47

이땅의 한반도는 중앙집권적 국가였는데 반해 일본열도는 봉건체제의 분권국가였다.

일본은 분쟁의 전국시대를 거쳤고, 이씨조선은 당파싸움으로 당대를 지세웠다.

그 전국시대는 힘과 힘의 대결이었는데 반해 당파싸움은 도덕적 명분의 싸움이었다.

그래서 일본은 힘이 길러졌고, 이씨조선은 공허한 성리학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과연 대한민국의 지폐에 등장하는 율곡 이이는 한민족에게 어떠한 유산을 남겼는가.

성리학은 리(理)에 관한 철학이며,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그것은 세상을 움직이는 도덕율에 관한 것으로 알고 있다.

세상의 원리는 참으로 오묘해서, 빛과 그림자가 동행하드시

조선의 리(理)는 비리(非理)와 동행했다.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리(理)는 도덕율에 바탕한 명분철학이다.

이씨조선의 당파싸움은 한마디로 말하면 도덕적 명분싸움이었다.

이러한 명분싸움에 이기면 권력과 직결되었기 때문에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그 명분싸움에 승리를 쟁취하고나면 도덕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非理가 판을 쳤다.

이를테면, 성리학의 온갖 도덕율에 관한 과거시험에 급제하고나면

곧바로 탐관오리가 되어서 일제에 의한 수탈의 백배 천배가 저질러졌고,

그 수탈은 과거급제에 대한 당연한 보상으로 여겨졌다. 이와같이,

이씨조선은 거의 모든 비리도 하나의 수완으로서 용인되는 사회였다.

결국 성리학은 명리(名利)를 장악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였다.

약자가 지키는 도덕은 가짜, 즉 굴종이며, 강자가 지키는 도덕이  진짜, 즉 관용이다.

작금의 대한민국도 이러한 사실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그러면 이씨조선은 왜 성리학에 몰두했을까? 이씨조선은 약소국가였다.

몽고족에게 치이고, 여진족에게 치이고, 중국에 치이고, 왜에 치였다.

힘의 약자가 강자에게 맞붙어 싸울 수 있는 것은 도덕적 명분이 유일하다.

이씨조선은 와신상담하면서 힘을 길렀어야 했는데

성리학으로써 소중화를 자처하면서 자위행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이씨조선이 세계최악의 빈곤국으로 전락한 이유다.

 

이 한반도땅에는 아직도 성리학의 유산이 유전되고 있으니, 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체사상이 그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제기적에 패한 조선민주주의공화국은 주체사상으로써

대한민국에 대항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은 상당한 위력이 있어 보인다.

실재로는 도덕적이지 아니하면서 도덕적인 척 하기를 좋아하는 한민족에게는 

주체사상은 매우 유용한 사상투쟁의 도구다. 이땅의 풍토를 볼 때, 주체사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도 빛을 볼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덧붙여서 한국인들이 아직도 일본을 향해서 삿대질하면서 반성을 요구하는 것도

성리학의 잔재로서 일본을 공격하는 행위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한 개인의 성격도 고치기 어려운데 어찌 민족성이 변할까. 

과거에 윤치호 선생이 한국인이 일본을 따라잡으려면 200년 이상 걸린다고 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그렇게 말한지가 100여년이 되었으니

이제 100년만 기다리면 될까?

 

그리고, 작금의 대한민국 좌파들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구어낸 모든 공헌자들을 

독재자나, 친일파나, 악덕자본가나, 인권유린자, 등의 프레임을 쒸워서 적폐로 몰아부치는 것도

성리학의 폐습으로써 명리싸움을 하는, 한민족에게 유전되고 있는, 

일소되어야 할 적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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