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글

한자를 왜 공부해야 하는가?

박희욱 2013. 10. 16. 06:10

얼마전 경성대에서 고사리손으로 엄마들의 손을 잡고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이린이들을 본 적이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더니 한자능력시험을 치루고 나오는 것이란다. 나는 가슴이 저리는 것 같았다. 한 참 뛰어 놀아야 할 어린이들이 불필요한 지식 쌓기에 몰두하는 것이 안쓰럽기가 말할 수 없었다. 그 아이들이 한자만 공부하고 있겠는가. 한글, 영어, 컴퓨터, 태권도, 피아노, 그림그리기 등등 산더미 같은 하루 일과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어릴 때는 노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학습이라고 본다. 노는 그 시기를 놓치고 나면 다시는 되돌려질 수 없고, 그렇게 쌓여진 지식의 양과는 관계없이 성장이 끝난 후에는 정신적 기형으로서 평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동물들의 어린 시기를 보면 서로 장난치고 노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때 평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긴요한 기본을 배우는 것이리라.

어떤 '한자능력검정시험'이라는 수험서의 머리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들어 있었다.
"30여년 간의 한글 全用敎育은 國民의 國語 能力을 低下시킴으로써 相互間의 意思疏通을 模糊하게 하고, 學習能力을 減少시켰을 뿐만아니라, 傳統과의 斷絶, 漢字文化權 내에서의 孤立이라는 結果를 빚어냈습니다. ~중략~ 한글전용 교육을 받고 자라난 세대가 이제는 중장년층이 된 바, 한자를 모르는데서 오는 불편을 후손에게 대물림하지 않기 위하여..."

나는 상기의 어느 글귀에도 동의할 수가 없다. 과연 한글전용은, 국어능력을 감소시켰는가? 의사소통을 모호하게 했는가? 학습능력을 감소시켰는가? 전통과의 단절을 야기했는가? 한글전용세대는 불편을 격고 있는가? 그리고 한자문화권이라는 말은 무엇이며, 고립은 또 무엇인가? 세계는 이미 영어문화권이다.

상기의 문장에 집어 넣은 한자는 마치 자전거가 달리는 길에 뿌려 놓은 돌멩이들 같다. 문장의 자연스런 흐름에 방해만 될 뿐이다.

나는 한글전용세대이고, 한자는 중학교 1년 남짓 동안 조금 공부했을 뿐이지만 조금도 불편을 모르고 살아왔다. 한자 공부는 정말이지 엄청 힘들고 지겨웠던 기억 밖에 없다. 지금은 한자책 외에는 어느 책에서도, 어느 신문에서도 한자를 찾아볼 수 없어도 아무 불편이 없는데 왜 지금에 와서 다시 한자교육을 하자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읽지도 쓰지도 않을 한자를 왜 수고스럽게 배워야 하는가? 다만, 외국어으로서의 한자를 공부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그리고 그럴 경우에도 간체자를 배워야 할 것이다.

오죽했으면 중국의 문호 루쉰이 이렇게 말했겠는가?

漢字不亡, 中國必亡!

한자가 망하지 않으면 중국이 망한다라는 말이다. 
중국에는 지금도 새 한자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으며, 아마도 문명국 중에서 가장 문맹율이 높은 나라가 중국일 것이다.

9만자 이상이라고 함. 학자는 1만자 이상, 대학은 7000자 이상, 고등학교는 3500자 이상, 공무원은 5000자 이상.

사람들은 국어 어휘의 70%가 한자어로부터 왔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우리말화 되었기 때문에 배우고 쓰기에 불편한 한자에 미련을 가질 이유가 전혀 없다고 본다. 70%가 한자어라는 말도 틀렸다. 최근의 조사에 의하면 실재로 사용하지 않는 한자어를 제외한다면 35%가 한자어라고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빵이라는 말은 불어의 pein에서 왔고, 라디오는 영어의 radio에서 왔지만 그렇다고 그 원어를 공부할 필요가 있겠는가? 세계의 어떤 언어이든 약점이 있을 수 있으며, 한글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런 약점은 기왕에 세계어가 됨으로서 우리가 배워야만 할 영어로써 보완하면 되리라 본다.

 

단어에는 사어(死語)와 생어(生語)가 있다. 사어와 생어를 한자로 쓰면 뜻이 더욱 분명한가 아니면, '죽은말'과 '살은말'로 표현하는 것이 뜻이 분명한가.

이해가 안되면 다른 예를 들겠다. 대변이라고 하는 것이 뜻이 분명한가 아니면 똥이라고 하는 것이 뜻이 분명한가. 대변이 그냥 똥이라고 한다면 똥은 냄새까지 나는 똥이다. 한자어는 사어 즉 죽은 말이고 우리말은 생어 즉 살아있는 말이다. 굳이 한자를 배워서 죽은 말을 사용할 이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한자를 사용하면 말이 맥이 없다. 고리타분한 한자로 된 연설문을 읽어 보라. 생명감이 없다. 한글전용이 시행되고 나서 한자어는 점차 시들해지고 있다. 그것은 한자어가 순 우리말보다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덜떠러지 사람들은 한자 내지는 한자어를 사용하면서 지식인인 척하는데, 알고보면 그런 사람일수록 무식한 사람이다.

새삼스러이 이제와서 다시 한자공부 열기가 되살아나는 것은 세계에서의 중국의 경제력과 영향력이 크짐에 따른 긍정적인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는 한자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에서 오는 것 같다. 나는 한문과 한자에는 전문가는 고사하고 완전한 문외한임에도 불구하고 답답한 마음에서 그 오해를 우리 회원님과 함께 짚어보고자 한다.

 

흔히들 서울대 학생이 자신의 이름도 한자로 쓰지 못한다고 개탄한다. 어처구니가 없다.

이것은 거꾸로 말한다면 한자를 전혀 몰라도 서울대에 합격할 정도의 공부를 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반증이다.

나의 이름이 熙旭이지만 빛나는 것과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바마가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쓸 줄 알아야 하는가. 쓸줄 안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習近平'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온당한가 , 아니면 '시진핑'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온당한가?

문제는 한국 사람이 한국인의 이름을 중국식으로  작명하는 것이 문제이다.



1. 한자는 뜻글자이고 한글은 뜻글자가 아니다?
한자의 생성초기에는 상형문자로서 그 글자를 보면 뜻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공부하기전에 글자만 보고서 그 뜻을 알 수있는 글자는 없다. 누군가는 한자 2만여 자 중에서 모양을 가지고 뜻을 유추할 수 있는 글자는 5자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므로 한자가 뜻글자라는 것은 오해이다. 다만, 한글은 영어와 마찬가지로 소리를 바탕으로 글자를 만든 음소문자이다(일본어는 음절문자).
예) 한글-------한자-------영어
글자: 털--------毛 --------fur
소리: 털-------마오--------퍼
뜻:    털--------털---------털

 
위에서 보듯이 한자가 뜻글자이면 한글과 영어도 뜻글자이다. 그래서 학자들 중에는 한자를 표의문자라 하지 않고, 표어문자 즉, 말을 나타내는 문자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안다. 또, 한글이 소리글자이듯이 한자도 소리를 갖고 있는 소리글자이기도 하다. 이것을 굳이 지적하는 이유는 중국어는 소리와 글자가 다르다는 오해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고대에는 중국어에도 문어와 구어가 따로 있었는데, 점차 구어가 사라지고 문어로 대체됨으로서 말과 글자의 음이 일치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자를 표의문자라고 하는 것은 표음문자와의 반대개념으로서 그렇게 지칭할 뿐이다.

 

한자는 분명코 뜻글자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제대로 된 예민한 학자들은 표의문자라는 용어 대신에 표어문자 또는 단어문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학자들이 표의문자라는용어를 사용하기는 해도 그것이 뜻이 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표음문자가 아니라는 의미에 그 용어를 사용할 뿐이다.

그런데 무식한 자들은 한자가 실재로 뜻글자인 것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자는 뜻글자라는 고정될대로 고정된 관념을 부숴야만 한다.

 

나의 이름이 朴熙旭이면 내 이름을 뜻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가? 뜻이름이라면 나는 둥글고, 빛나고, 아침햇살처럼 빛나는 사람이어야 한다. 나의 한자 이름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마찬가지로 한자는 하나의 단어를 상징하는 기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한자는 단어문자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고, 공부하기 전에는 결코 한자의 뜻을 알 수 없다. 한자를 뜻글자라고 하는 것은 'sky'가 '하늘'이라는 것을 배우고 나서 영어가 뜻글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2. 한자만 뜻글자로 오해하는 원인.
중국어는 기본적으로 단음절 언어이고, 한글을 비롯한 모든 언어는 다음절 언어이다. 아마도 이 이유 때문에 중국어는 소리 문자로 발전하지 못했을 것으로 본다.
예) 한글-------------한자-------------영어
--아름답다----------美(메)-----------beautiful
'아름답다'에도 뜻이 있고 '美'에도 뜻이 있으며, 'beautiful'에도 뜻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단음절인가 또는 다음절인가 하는 차이 뿐이다.

 

내가 알기로는 중국어도 고대에는 다음절 언어였는데 단음절의 문자가 발생한 이후 구어체 언어가 문어체 언어로 바뀌면서 단음절 언어로 전환된 것이다. 그것은 그당시 문자를 아는 식자들의 오만에 의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3. 한자를 배우면 어휘력이 증가한다?
한자를 배우면 어휘력 증가에 도움이된다고 믿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내 자신의 경우를 보면 한자를 배움으로써 어떤 단어의 뜻을 습득한 경우는 없다. 대개의 경우 독서 중에 문장내에서 그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거나 대화를 통해서 어휘를 습득해 나간다. 또는 사전을 이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大學(university)이라는 단어에서 大자와 學자를 안다고해서 大學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 수는 없다. 土木이라는 글자에서도 civil engineering란 개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다른 어휘들도 대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어떤 한자 단어의 개념을 먼저 받아들이고 나서 그 한자를 보지, 그 한자를 보고서 그 단어의 개념을 아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자만 알면 어휘의 습득이 용이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이것은 중국인들이 과연 세계에서 어휘력이 가장 높은 국민인가를 조사해 본다면 명약관화할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한자의 습득이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중국인들의 어휘력이 뒤쳐지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문명이 세계를 주도하는 시대가 도래하기는 용이하지 않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땅덩이와 인구를 가지고서도. 어쩌면 서양문명에 뒤쳐진 이유도 한자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중국의 수학이 뒤쳐진 이유가 문자에 있다고 지적한 사람이 있었다. 한자는 기호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자가 진정으로 뜻글자라면 중국어사전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있다. 한자는 조어력이 좋다고 하지만 그것도 옛말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한글로 자유스럽게 조어를 하고 있다. 조어력이 좋다면 그 결과로 어휘도 많아야 한다. 중국어 사전이 표음문자인 영어사전 보다 어휘가 많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직접 비교한 일은 없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내기를 해도 좋다. 왜냐? 문화수준의 척도는 바로 어휘량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금 새로운 단어를 한자로 조어하는데 틀림없이 무척 애를 먹고 있을 것이다.

 

진실로 한자가 뜻글자라면 중국어 어휘습득이 용이해야 한다. 그러나 실재로는 그렇지가 않다. 한자를 알아도 영어단어 외우듯이  그냥 반복해서 외워야 한다. 중국인들이 어휘력이 좋은가, 아니면 한국인들이 어휘력이 좋은가? 나는 한국인들에게 표를 던진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한자어는 이미 한글화 되었다. 그래서 굳이 한자를 배우지 않는다 할지라도 문맥에서 단어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도 어려운 문자를 습득하는데 그만한 노력과 시간을 투입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4. 문장에 한자가 있으면 이해도가 깊어진다?
위에서 인용한 한자를 병기한 문장이 과연 이해가 더 용이한가?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사실, 한자를 병기했을 때 오히려 이해력이 떨어지고 독서속도도 떨어진다는 조사연구의 결과를 본 적이 있다. 아마도, 한자어 하나 하나가 주위력의 흐름에 있어서 일종의 매듭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한글을 읽을 때는 언어직관이 재빨리 작동하여 문장전체로 이해를 하는 반면 한자는 단어 하나 하나가 두뇌의 논리회로에 들어가서 이해하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한글보다 이해력과 독서속도가 늦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글 전용이라면 단어의 어미를 자구 하나 하나가 아닌, 문장의 흐름내에서 그 의미를 파악하기 때문에 이해가 더 분명할 수도 있겠다 싶다.

 

아래에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1. 文語體가 좋은가 口語體가 좋은가.

2. 문어체가 좋은가 구어체가 좋은가.

3. 글말투가 좋은가 입말투가 좋은가.

 

셋중에서 어느 것이 제일 읽기 쉽고, 읽는 속도가 빠르고, 이해가 재빠른가?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우리말 우리글이 훨씬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자를 사용하면 뜻이 분명해진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우리말로 된 한글이면 우리의 뇌가 훨씬 빨리 반응을 한다.

바다, 하늘, 구름 등이 이해가 빠른가, 아니면 海, 天, 雲 등이 빠른가?

바다는 그냥 바다이다. 왜 바다를 바다로 했는지 알아야 바다의 뜻이 더 분명한가?

엄마는 그냥 엄마이다. 왜 엄마를 엄마라고 했는지 알아야 엄마의 뜻이 더 분명한가?

한자는 뜻이 분명하고 영어는 뜻이 불분명한가? 실재로는 그 반대다.

한자는 한 글자에 수십가지의 뜻을 가진 것이 엄청나게 많다. 예를 들자면 天에도 뜻이 10가지가 넘는다. 이런  글자가 부지기수이다.

또, 같은 의미인데도 글자의 형태가 다른 것이 너무 많다.

도덕경의 해석이 수십가지로 나올 수 있는 것도 한자의 불분명확성 때문이다.

 

문어체라고 적으면 문어잡는 채라거나, 구어체라고 적으면 옛날 말투라고 오해를 할 소지가 있다고 억지를 부리지는 말아라.

한자말은 되도록이면 우리말로 전환을 할 생각을 해야지 한자로 적어야 한다는 발상은 엿장수에게나 갖다 바쳐라. 엿먹게!

 

잠시라는 말이 있다. 이것이 한자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것을 暫時라고 쓴다고 해서 이해도가 더 깊어지는가? 다른 단어는 그렇지 않다고?

어떤 단어를 말하는가? 설령 그런 단어가 있다하여도 문장안에서 보면 굳이 한자로 표기할 이유가 없다.

뿐만 아니라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세계최고의 난해한 문자인 한자를 배운다고 개고생할 이유가 없다.

설령이라는 말도 한자어이다. 한자로 쓰고 싶다면 그대만 쓰라. 결코 한자공교육은 주장하지는 말아라!

 

중국어에는 음절이400여개 밖에 안된다. 그래서 동음이의어가 수없이 많다. 그래서 그들은 한자를 버리고 싶어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중국인들의 딜레마이다.

그 한자어로 말미암아 우리의 말에는 동음이의어가 많기 때문에 한자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도 있으나 그것이 문장에서는 전후 좌후의 문맥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단어 하나만 떼어보면 한자어가 뜻이 분명해 보일 때가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서 북쪽에서는 '천출'이라는 말을 쓴다. 이것을 한글로 쓰면 무슨 뜻인지 모른다. 하지만 '천출장군 김정일'라고 한다면 왠만한 무식쟁이가 아니면 무슨 뜻인지 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국회의원이란 자가 '천한 기생 출신'으로 해석된다고 억지를 부린다. 북쪽의 보안요원들이 그 자를 억류하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5. 한자를 모르면 전통문화와 단절된다?
그렇다면 한자를 배워서 계승할 문화가 무엇이란 말인가? 퍼뜩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한시를 배워볼까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한시를 줄기려면 대학에서 한문을 전공하고도 용이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한문이 필요할 경우도 있기는 할 것이다. 그러면, 그럴 경우는 한문 전문가에게 맡기면 될 것이다.
사실, 중국에서도 두보나, 이백의 시를 이해하는 사람은 전문가가 아니면 극히 더물다는 것을 중국여행중에 확인할 수 있었다. 한자의 뜻도 변하였지만, 무엇보다도 한자의 음이 변하여 버렸기 때문에 중국어 고유의 4성에 의한 음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과연 한자를 공부한다고 해서 전통문화가 계승이 되고, 한자를 모르면 전통문화가 단절되는가? 한자와 관계없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살아날 전통문화는 살아나고 죽어야 할 전통문화는 죽는다. 한자어를 쓰면 유식하다는 그런 전통적 믿음은 단절시켜야 할 문화이다. 정말이지 한자는 죽은 문자이다. 따라서 새로운 문화는 한자에 실을 수 없다. 온고는 가능하겠지만 지신은 안된다. 한자를 가지고서는.

 

한자를 모르면 전통문화가 단절된다는 것은 완전한 공갈협박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한문문장을 단 한 줄이라도 독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모를 일이다.


6. 한자를 배우면 인성이 좋아진다?
무슨 이런 해괴한 말이 있는가? 특정문자를 습득한다고 해서 인성이 좋아진다는 말에 대해서는 고소를 금치 못한다.

만일 그렇다면 중국인들의 인성이 좋아야 할 것 아닌가? 과연 그러한가? 내가 듣기로는 중국인들의  인성은 오히려 고약한 것으로 할고 있다.

몇년전에 전직 교육부 장관 7명이 모여서 한자교육의 부활을 교육부에 건의하였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나로서는 정말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들이야말로 우리나라 교육을 망친 것에 대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 사람들이 장관직을 떠난 후에도 또다시 교육을 망치려 하는가!

앞으로 국가의 공문서에 한자를 병기한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비효율적이고 인력낭비라고 본다. 할 일이 없는 공무원이 많다고 하니까 그것이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또, 복거일이라는 자는 영어 공용어론을 주장하고 있다. 나로서는 그를 복날에 개패듯이 패주고 싶다. 무엇이 부족해서 잘 나가는 한글전용 정책을 뒤집으려고 하는가?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정체성을 의심받으면서까지!

한국인은 언어에서조차도 이렇게 외제선호사상이 투철한가? 나는 세종대왕을 위대한 인격으로 존경해 마지 않는다. 이 시대에서조차도 한자를 병용하자고 주장하면서 한글의 우수성을 모르는데 사대사상이 팽배하던 그 시대에 신하들이 어떻게 한글의 우수성을 알 수 있었으리요. 그런 무지의 소치만큼이나 한글반포에 극렬히 반대하였을 것이다. 그런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한글을 제정하고 반포한 것은 오로지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확신과 멀리 후대를 바라보는 안목과 백성을 사랑하는 깊은 배려에서 시행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세종대왕은 진실로 불가능한 것을 이루어낸 불굴의 의지를 가진 인간이다. 그님은 진정으로 위대하다!

* 내가 한글을 배울 때는 ㄱ, ㄴ, ㄷ, ㄹ..., ㅏ, ㅑ, ㅓ, ㅕ.... 등의 자모를 배운 다음에, 가, 갸, 거, 겨, ...., 나, 냐, 너, 녀, ... 등의 순으로 배운 다음에 단어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우리 자식들은 곧바로 단어를 배웠다. 한자를 배워서 어휘를 습득하고자 하는 것은 한글의 자모부터 배우고 단어를 배우자는 식과 유사하다. 예컨데 우리 아이들은 바로 '사자(lion)'을 배웠지 獅자와 字자를 배우고 나서 사자를 배운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獅자와 子를 배운다고 해서 사자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자는 두뇌의 논리의 작동시키고, 한글은 우리의 언어직관을 작동시킨다. 그러므로써 한글을 사용하는 것이 더 가슴에 와닿고, 훨씬 빨리 의미를 파악한다. 자! '獅子가 토기를 잡아먹는다.'와 '사자가 토끼를 잡아먹는다'를 비교해  보라. 사자를 다른 단어로 교체해도 마찬가지다.

 한자를 알면 어휘습득이 용이하다는 것도 잘못된 믿음이다. 어휘는 문자가 아니라 문장을 통하여 습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글의 어휘를 습득하기 위해서 한자를 배워야 한다는 것은 영어를 배우기 위하여 라틴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자어는 이미 한글화 하였다.

 

 

 

 

viveka

상기의 글은 이 분야에 전문적 식견이 전혀 없는 관계로 본인의 무지일 수도 있는 의견입니다. 회원님들의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읽을 일도, 쓸 일도 없는 한자를 무엇 때문에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희생해 가면서 공부해야 합니까? 내 딸이 입사시험을 위하여 한자능력검정시험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 시간에 교양을 위한 독서도 하고, 좋은 취미도 배우라고 말하지 못하겠군요. 그 아이가 이렇게 배운 한자를 과연 어디다 쓸 것인가? 이렇게 저렇게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자꾸 뒷전으로 밀려나는군요! 08.12.14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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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느 댓글1

 

선생님의 주장은 막연하게 한자의 유용성을 주장하는 다른 사람들의 것과 같군요.
중국문명이 세계문명에 뒤떨어지 이유를 중국어와 한자에 그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실재로 손문은 한자가 망하던지 중국이 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중국의 민주화가 늦은 이유도 근본적으로는 문맹율이 높은 것에서 연유한다고 보아도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한자를 알면 윤리도덕에 도움이 된다는 터무니 없는 말도 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중국사람들의 품성이 좋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자는 영성과 창의력에 방해가 되면 되었지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중국문명이 자랑하는 것이 겨우 나침판, 종이, 화약, 인쇄술 정도입니다. 서구문명에 비하면 부그러운 것이지요.
우리의 한자말은 이미 한글화 되어서 신문을 읽을 때 전혀 불편이 없습니다. 만일 신문에 한자를 쓰면 불편할 사람이 무척 많아질 것입니다.
한자를 쓰면 뜻이 분명해진다는 것도 사실무근입니다. 단어의 정학한 뜻은 문장전체에서 해석할 수 밖에 없고 한자를 사용하면 단어자체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서 독서속도도 늦어지고 의미의 해석도 단어자체에 국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중요한 오해가 거의 모든 사람이 중국어는 뜻글자라고 합니다. 중국어를 공부해본 사람은 한자가 뜻글자가 아닌 것을 압니다. 이 오해는 중국어가 본래 단음절문자인 것에서부터 연유합니다. 중국어는 표음문자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표의문자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처음에 표의문자로 출발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한자를 알면 어휘력이 놓아진다고 사람들은 믿습니다. 조사한 바가 없겠지만 저는 결코 중국사람이 한국사람보다도 어휘력이 높다고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낮을 것이 분명합니다. 어휘는 독서에서, 또는 대화속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되어지는 것입니다. 어휘력을 높이기 위하여 한자를 배워야 한다고 오해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한자는 문화발달을 저해합니다. 특히 현대와 같은 스피디한 문화에서는.

한마디로 말하면 한자는 표음문자로 발전하지 못한 열등한 문자입니다. 그렇게 된 것은 중국어가 단음절 문자이기 때문입니다. 결코 중국문화가 세계를 주도하는 시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의 한자는 이미 죽은 고어가 되어버렸습니다. 현대의 중국문자와는 형태와 뜻이 상당히 다른 한자가 많습니다. 실재로 한국한자로 중어를 이해하다가는 실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국어로서 현재의 중국문자를 배우는 것은 별도의 문제인데, 이것도 바로 중국문자와 중국언어를 배우는 것이 낫지, 미리 한국의 한자를 배울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물론 득도 있겠지만 오히려 해가 되는 면도 많습니다.

이제는 한자를 배우자는 말은 그만하였으면 좋겠습니다. 한자를 공부하는 것은 영어를 배우기 위하여 이미 죽어서 사라진 라틴어를 배우는 격입니다.

위대한 한글이면 충분합니다. 모든 언어가 부족한 부분은 있겠지요. 그것은 어차피 세계어가 된 영어를 이용하면 됩니다.

저는 한자가 있어서 불편한 적은 있어도 한자가 없어서 불편한 적은 없습니다.
한자를 사용하게 되면 불편한 많은 사람들이 발생할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단 500단어만 알아도 문맹자가 아닌 것으로 친답니다.

그만큼 한자는 배우기가 어렵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신문을 해독하기위해서 7,000자 정도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만큼 한자는 배우기가 어렵다는 말이지요.
어릴 때 한자를 외운다고 한자를 수없이 반복하여 쓰면서 시간을 낭비한 것이 억울하고,
뛰어 놀아야 할 어린 고사리 손들이 한자를 배운다고 글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가슴이 미어집니다.

사람들은 현재 중국이 중국문자 때문에 얼마나 곤욕을 치르는지 까마득하게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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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느 댓글2

 

한자공부가 쏙 들어오는 방법은 없습니다.

중국에서는 단, 500자만 알아도 문맹이 아닌 것으로 본답니다.

그런데 신문을 보는데는 7,000자 정도가 필요하다고 하네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자를 알면 어휘력을 쉽게 키울 수 있다고 여깁니다.

한자가 뜻글자라는 뿌리 깊은 오해에서 비롯됩니다.

이 오해는 중국어가 단음절문자인데다가 우리 말고 달리 어미변화가 없는 것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언어형태로 말미암아서 상형문자가 표음문자로 발전하는 것을 저해하였고, 또 사회가 복잡다단화 하면고 문명이 발전되면서 언어도 다음절화로 발전하여야 하는데 문자가 상형문자인 것으로 인해서 그렇게 되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것은 순전히 저의 생각이기는 하지만, 결국 문자로 인해서 중국언어가 발전하지 못하고 말하자면 좀 언시적인 언어로 남은 것으로 보입니다. 언어는 문명과 문화를 담는 그릇입니다. 부실한 그릇으로는 그 문명과 문화를 발전시키기가 어렵지요.

저는 한자가 약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한자를 통하여 어휘를 알게 된 것은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그냥 대화와 독서를 통하여 저절로 익힌 것이지요. 한 단어의 정확한 의미는 문장 속에서 파악될 수 밖에 없습니다.

 

어휘라는 것은 하나의 상징이기 때문에 어휘 자체로서 정확한 뜻을 표현할 길은 없고 그런 언어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한자로 쓰면 사전에 그 어휘를 알기 전에 글자만 보면 그 뜻을 알 수 있다고 착각하지요? 비근한 예를 들자면 '대학'이라는 말을 봅시다. 서양인에게 'big study'라 써 놓으면 'university'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떠오르겠습니까? 가만히 살펴보면 모든 한자 어휘가 이런 식입니다.

 

한자가 과연 어휘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면 중국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어휘력이 풍부해야 하는데

실상은 한자의 어려움 때문에 문맹율이 높고 그 결과로 서구문명에 뒤쳐지게 되었고 엄청난 덩치를 가지고 있슴에도

수치스럽게도 오랜동안 이민족의 지배를 받았지요. 그리고 지금도 민주화가 늦은 이유도 문자생활의 불편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짧은 저의 소견으로는 중국문명이 세계를 주도하는 시대는 오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사실, 손문조차도 중국이 망하든지 한자가 망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간체자가 만들어진 지금도 중국인들은 문자생활에서 엄청난 불편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아래의 실험에 대한 회원님들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만일, 한자와 한글을 모르는 100명의 외국인(미국인이나, 호주인이나, 아프리카인이나)을 두 그룹으로 나눠서 한쪽은 한글로만 된 책으로 공부시키고, 다른 한 쪽은 한자혼용 책으로 공부시킨다면(물론 한자도 공부하면서) 3년쯤 후에는 어느 쪽 그룹이 더 어휘력이 좋을까요?

 

근래에 들어서 새삼스러이 한자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정말 신문에 한자 한 자 없어도 아무런 불편없이 읽을 수 있는 편한 세상이 되었는데 또 다시 옛날로 돌아가자는 생각에는 어처구니가 없어집니다.

물론 중국의 경제규모가 크짐에 따라서 중국어의 중요성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고 그에 따라서 중국어를 배워할 필요는 있습니다만, 이것은 외국어로서의 중국어입니다. 중국문자(간체자)와 한자와는 그 형태와 뜻에 있어서 상당히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한자를 배우면 중국어를 배우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제 생각으로는 도움이 되는 만큼이나 장애가 되는 점이 많다고 봅니다.

 

한자에 대한 별다른 지식이 없는 제가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한 참 뛰어놀아야 할 어린아이들의 고사리손에 연필을 쥐어주어서 바보처럼, 유용성도 별로 없는 죽은 문자를 수도 없이 반복 쓰도록 하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기 때문입니다.

한자 뿐임입니까? 영어다, 수학이다, 컴푸터다 얼마나 많습니까? 시기를 놓친 정서교육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자에 대한 사대사상은 무척 뿌리가 깊은가 봅니다.

한자를 배우면 윤리도덕교육에 도움이 되고, 논리력, 사고력, 이해력, 창의력이 증가한다고도 합니다.

제가 보기로는 전혀 근거가 없는 말입니다.

중국인들의 인간성은 평균이하입니다. 재중교포들의 말입니다.

도대체 중국 문명이 자랑할만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기껏해야 종이, 화약, 나침판, 인쇄술 등이  아닙니까?

오히려 한자 때문에 문명이  뒤쳐졌다고 보아야 되겠지요.

병마용굉, 만리장성, 자금성 등을 자랑하겠지만, 사실상 그들의 우둔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런지요.

저는 고대유럽의 놀라운 문명을 보고서 같은 동양인으로서 부끄러웠습니다.

 

터무니없는 한자에 대한 막연한 상식을 타파하여야 하겠습니다.

좀 비약적인 말인지는 몰라도 우리가 한자를 계속 사용한다면 우리를 자기네 속국정도로 여길지도 모릅니다.

중국 열차안에서 만났던 대학원생이 말하기를 미국이 한국의 통일을 저지하였다고 하더군요.

6.25전쟁은 중국과  미국이 함께 게입한 전쟁입니다. 미국이 통일을 방해했다면 중국도 통일을 방해한 것입니다.

자기네들 때문에 통일이 되지 못한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더군요.

그 대학원생의 시각은 한반도를 자기네 땅으로 여기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티벳조차도 본래부터 자기네 땅이라고 서슴없이 말하였습니다. 마치, 오랜세월 동안 터벳땅을 공짜로 빌려주고 있었다는 것처럼! 어처구니 없는 말투였습니다. 한반도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한자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 납시다.

한자는 뜻글자라서 의미가  분명하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반대로 한자는 글자 한 자에 너무 많은 뜻이 있어서 애매모호합니다. 그 애매모호성 때문에 한자에는 뜻이 깊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 애매모호성 때문에 함축성이 있고, 그 함축성 때문에 한시 나름의 장점을 가지고 있기도 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노자의 도덕경을 해설한 책이 수십가지이고 그 내용이 서로 사뭇 다릅니다. 그것은 한자의 애매모호성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한자와 관계하여 밥을 먹는 사람들, 그리고 한자지식을 가지고서 지식인인 체 하는 사람들은 끈질기게 한자의 유용성을 주장할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지금 현재 모든 신문이고 책이고 할 것 없이 한글전용인데 불편한 점이 있습니까(한자를 배워야할 만큼)? 있다 하여도 이미 세계어가 된 영어를 이용하면 될 것입니다.

쓸 필요도 없고 읽을 필요도 없는 한자를 왜 어렵사리 배워야합니까?

왜? 왜? 왜?

 

 

 

 

나는 한자를 몰라서 불편한 적은 없었다. 그런 적이 있었다면 오로지 한자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뿐이다.

 

 

viveka
'엠피쓰리'는 그냥 '엠피쓰리'면 충분합니다. 반드시 'MP3'로 표기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우기 M이 무엇이며,P가 무엇이며, 3가 무엇인지 알 필요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대학'이면 충분합니다. '대'는 'big'이며, '학'은 'study'라는 것을 알 필요가 없지요. 또, '토목'에 있어서도 '토'는 'soil'이며, '목'은 'wood'라는 것을 알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엄청난 공을 들이고,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희생해 가면서...

08.12.17 09:07

 

 

한글이 없을 때는 한자공부도 무척 어려웠겠지요. 음과 훈을 글로써 표현할 방법이 없었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선생으로부터 직접 배울 수 밖에 없었겠지요. 잊어먹을 때마다 선생에게 물어보아야 하니, 선생의 권위가 하늘 높이 올라갈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중국에서는 음을 표현하기 위하여 한자를 배우기 전에 먼저 알파벳부터 배웁니다. 자판기로 입력할 때도 알파벳과 4성을 입력하여 한자로 변환시키겠지요. 08.12.18 08:36

 

通➡사무칠(통). 두루 미칠(통). 통할(통). 꿰뚫릴(통). 형통할(통). 지장 없이 행하여 질(통). 통달할(통). 온통(통). 전체(통). 두루 있을(통). 일반적일(통). 지날(통). 경과할(통). 다닐(통). 왕래할(통). 다니게 할(통). 왕래하게 할(통). 환히 알(통). 기별할(통). 전하여 알릴(통). 통역할(통). 말할(통). 진술할(통). 간음할(통). 사귈(통). 교제할(통). 의사가 상통할(통). 입신출세할(통). 책이름[白虎通](통). 통(통). 벌(통). 편지 또는 서류 세는 수사(통). 순색(통). 북칠(통). 사방 십리(통). 말똥(통). 간음(통). 37개의 뜻


釋➡(석). 해석할(석). 변명할(석). 석명할(석). 처리할(석). 깨달을(석). 벗을(석). 옷 벗을(석). 버릴(석). 그만 둘(석). 폐지할(석). 풀릴(석). 녹을(석). 내 놓을(석). 석방할(석). 복종할(석). 폐할(석). 놓을(석). 손을 뗄(석). 갈(석). 끼칠(석). 쏠(석). 발사할(석). 젖을(석). 추길[물에 젖게 하다](석). 일[淅米(석)]. 쌀 일(석). 풀이(석). 석가(석). 불교의 교조(석). 불교(석). 중(석). 풀릴(석). 풀(석). 석방할(석). 기쁠(역). 36개의 뜻


한자로써는 외국어를 쉽사리 받아들이기가 곤란하다.

외국어를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는 것은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다만 말과 상통한다.

이것도 중국의 발전에는 한계가 있다는 증거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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