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옥에 티가 있다고 해서

박희욱 2011. 2. 27. 06:47

오늘 청사포 포구에 내려가다가 꼬마 하나를 만났다.

무척 똘똘해 보이는 녀석이었다.

내가 "안녕!"하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면 꼬마들도 대개 "안녕!"하고 답한다.

대답할줄 모르는 아주 어릴 경우는 가족들이 '안녕! 해야지'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서양아이들은 말을 할 줄만 안다면, 아무리 어려도 인사에 답하여 준다.

얼마전 해운대 비치에서 유모차를 타고 지나가는,

아기와 다름없는 꼬마에게 무심코 "Hello!"라고 하였는데, 즉각 기대하지 않았던  "Hellow!" 하는 답이 돌아와서 조금 놀랐다. 

 

영국 런던 교외의 열차안에서의 경험이 생각난다.

아주 어린 꼬마인데 손을 내밀면서 악수를 청했더니,

똑바로  일어서서 오른 손에 쥐고 있던 인형을 왼손으로 옮겨쥔 다음에 

오른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영국신사의 자손이라서 일까.

우리 한국의 아이들은 이렇게 할 줄 모른다.

이런 경우 대개 그냥 왼손을 내밀기가 일수다.

서양아이들의 인사 에티켓이 부모의 교육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아마도 문화적 전통에 기인하는 것 같다.

 

그런데 오늘 이 녀석은 내 인사에 대답이 없다.

그래서 다시 조금 큰 소리로 "안녕?"해도 묵묵부답이라, "안녕! 해야지?"라고 했더니,

"저는 모르는 사람과는 말 안해요!"라고 마치 적의라도 가지고 있는 듯한 태도였다.

"나는 너를 아는데?"

"그러면 언제 봤어요?"

"조금 전에 저 앞에서!"

"그러면 내 이름이 뭔지 아세요?"

"김 똘똘"

"그것 보세요, 모르쟎아요!"

그러고는 쌀쌀맞게 돌아서서 가버렸다.

 

맹랑한 녀석이다.

나는 좀 머쓱해졌지만, 그래도 그녀석이  좀 튀는 놈인가보다고 좋게 생각하기로 하면서,

담너머 아주머니에게 이 얘기를 하였더니, 요즘은 학교에서 그렇게 하라고 가르친단다.

아마도 유괴, 납치가 많기 때문인가보다.

그렇다면 내가 사탕을 가지고 다니면서 아이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그들에게 의심을 사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아니! 이럴수가! 학교에서 사람을 의심하도록 가르치다니!"

정말이지 이런 것은 구더기 무서워서 된장 못담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이것이 소위 말하는 교욱이라는 말인가!

 

언젠가  어떤 꼬마에게 사탕을 주니까 그 애 엄마가 받지 못하게 하여 내가 머쓱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사탕이 치아에 해롭기 때문에 거절한 것으로 여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낯선 사람을 주의하도록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나 보다.

그렇다면 어린아이들 희롱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의 하나인 나에게는 자못 큰 타격이 될 수도 있겠다.

그래도 내 버릇을 버릴 수야 없겠지만.

 

잠시 언쟎은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 전에도  그 녀석에게 똑 같은 경험을 겪은 것이 어렴풋이 기억에 떠올랐다.

점점 세상은 이렇게 삭막해져 가는가?

우리 사회가 도처에서 이렇게 극단적인 것을 가지고서 전체를 보는 경향이 너무 강한 것 같다.

그런 것은 산을 보지 않고 나무만 보는 격으로, 마치 옥에 티가 있다고 해서 옥을 내던져 버리는 일이다.

많은 법들도 이처럼 옥이 아니라 티끌에 포커스를 맞춰서 제정되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때가 많다1.

 

 

 

  1. 우리나라 교육법이 교육을 망치는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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