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가는 길 899

가치 있는 일

사람들은 가치있는 일을 찾아서 하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가치있는 일을 찾아서 하기보다는 불필요한 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가치있는 일을 하게 되고, 설령 가치있는 일을 하지 않아도 좋다. 그러면 남는 시간은 명상의 시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인생은 명상이어야 한다, 그외에 진정으로 가치있는 일은 없다.

道와 無心

길(道)을 갈 때 무심코 걸어가면 된다 무심코 걸어가다가 돌뿌리에 걸려서 넘어져서 자빠져도 무심코 일어나서, 또 무심코 앞으로 걸어가면 된다, 그렇게 무심코 걸어가다가 저승사자와 맞딱뜨리면, 또 무심코 함께 따라가면 된다 그렇게 해서 천당에 가면 또, 무심코 살면되고, 행여 지옥에 가더라도, 또 무심코 살면 거기가 바로 천국이다 그러니 천당과 지옥이 따로 없고 무심코가 천국이다 그 무심코가 바로 무심이다

지혜와 지식

니체는 몸은 큰 이성이며, 머리는 작은 이성이라고 했다. 그렇드시 경험은 큰 이성이고, 생각은 작은 이성이다. 경험에 의한 이성이 곧 지혜이며, 생각에 의한 이성이 지식이다.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지혜에 의존하며, 경험이 적은 사람일수록 지식에 의존하려 한다. 보수는 경험에 의존하는 사람들이라 한다면 좌파는 지식에 의존하려드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서 경험이 많은사람은 보수가 되고, 나이가 어려서 경험이 부족한 사람은 좌파가 된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도 자꾸 과거에 배운 지식에 천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좌파들이고, 그들은 지혜가 부족하고 비이성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윈스턴 처칠은 젊어서 좌파가 아니면 가슴이 없는 사람이고, 늙어서 우파가 아니면 머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행복과 불행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행복의 보따리와 불행의 보따리로 나누어서 담으려 한다. 그러면서 되도록이면 행복의 보따리는 크고 불행의 보따리는 작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것은 어림없는 일이다. 아무리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동일한 크기의 불행의 보따리를 가지고 있고, 아무리 불행해 보이는 사람도 동일한 크기의 행복의 보따리를 가지고 있다. 다만 그 두 보따리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고, 때에 따라서 번갈아 들고 있다. 파도가 마루와 골로 이루어져 있드시 인생 또한 행복과 불행으로 균형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복이 크지면 뒤따라서 불행도 크진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두 보따리를 풀어서 합쳐버리는 일이다. * * * 나는 40년 전에 행복해지기를 포기해버렸다. 행복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지금 생각해보..

천국

천국 그래도 그대는 천국으로 올라가고 싶은가? 천국에는 선도 없고 악도 없다. 천국에는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다. 천국에는 사랑도 없고 미움도 없다. 천국에는 행복도 없고 불행도 없다. 선과 악, 시간과 공간, 사랑과 미움, 행복과 불행 등 이 모든 것은 천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대의 대뇌피질속에 있다. 그러므로, 그대가 대뇌피질의 작동을 멈추고 침묵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 순간이 바로 천국이다. 예수가 승천한 곳도 바로 그곳이다. 그래도 그대는 정말 천국으로 올라가고 싶은가? 이 그림이 아름다운 것은 그대의 시선을 끌어서 그대의 대뇌피질의 작동을 일순간 멈추게 하기 때문이다.

문패문화

여기 괴테의 집에도 담장도 없고, 대문도 없고, 문패도 없다. 담장문화, 대문문화, 문패문화, 이것은 우리가 물려받은 버려할 유산다. 네 자신의 둘레에 담장을 설치하지 마라. 네 마음에 대문을 만들지 마라. 네 자신에 문패를 달지 마라. 그대는 '없슴'이다. 그 없슴이 홀로이며, 그 홀로가 곧 전체이고, 그 전체에는 담장이니 대문이니 문패니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