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가는 길 888

사념과 죽음

사념은 사물의 본질이 아니라 사물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이념이니, 사상이니, 관념이니 하는, 念자 돌림은 모두그러하다. 그러므로, 사념, 즉 자신의 생각에 끄달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무념으로써 사물을 직시하라. 그 무념이 무심이며, 그 무심이 바로 무아다. 무념, 무심, 무아는 삼위일체다.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은 자신의 사념이끊기는 것을 두려워 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제외한 동물에게는 사념이 없다, 그러니 죽음이 없고, 따라서 종교도 없다. 낙원에 그대로 있는 것이다. 인간이 낙원에서 추방된 것은, 사념, 즉 금단의 열매를 따먹었기 때문이다.

본성

인간 본성에 충실하라. 본성에 충실하는 길은 사념을 피하는 것이다. 즉 지식이나, 사상이나, 이념과 같은 사념을 피하는 것이다. 이런 사념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즉 타인과 논쟁하고, 경쟁하고 다툴 때이다. 그러므로 타인이 없으면 사념도 필요없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러면 저절로 본성에 충실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장 자크 루소가 말했드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오직, 인간과 인간에게 사육되는 가축만이 낙원에서 추방당했다. 사실로, 인간도 자신의 사념에 사육되는 가축이다. 가축이 되지 마라.

신의 섭리와 인과법칙

세상과 우주만물을 다스리는 신의 뜻을 섭리라고 한다. 그렇다면, 세상과 우주만물은 결과이며 그 원인은 신의 섭리인가, 아니다. 세상과 우주만물은 있는 그대로이며, 거기에 원인과 결과는 따로 없다. 원인을 찾자면, 사람마다 서로 다른 원하는 대로의 끝없는 원인을 찾을 수 있지만*, 그것은 없다는 말과 다름없고 사람의 욕망에 따를 뿐이다. 인과법칙은 욕망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욕망이 없는 자에게는 인과법칙이란 없다. 세상은 있는 그대로일 뿐이니, 침묵하라. * 인간은 우주탄생의 원인을 찾아서 빅뱅까지 알아냈지만, 이제는 빅뱅원인을 찾아서 백뱅이전까지 뒤쫓고 있다. 그대의 탄생원인을 찾아서 우주폭발까지 쫓아갈 수 있겠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탄생원인은 없다.

죽음

저멀리 보이는 수평선 너머로 범선이 사라지지만 그 범선은 역시 먼 곳의 수평선을 향해서 나아간다. 사실상 수평선은 실재가 아니라 현상에 불과하다.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끝과 크기를 논하지만 그런것이 있을 수없다. 끝이니 크기니 하는 것은 공간개념으로써 우주를 생각하기 때문지만 시간과 공간은 실재가 아니다. 죽음 또한 그런 수평선과 우주의 끝과 같아서 실재하지 않는다. 非言語의 세계인 참나의 세계에서는 죽음이란 없다. 다만 육체와 함께 사념이 소멸할 뿐이며, 죽음은 우주 바깥의 일이다.

질투심

카인은 동생 아벨에 대한 질투심으로 그를 살해했다. 그 이후, 인간에게는 동물에게는 없는 질투심이 유전되고 있다. 그 질투심이 인간의 모든 행위의 원류가 되어 흐르고 있다. 그리하여 그 질투심은 인간행위의 원동력이 되는 에너지다. 인간행위의 모든 행위는 질투심과 그 이면인 열등의식(컴플렉스)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질투심을 잘 이용해야 하고, 그것에 따라서 인생의 승패가 엇갈린다.

참나

아무도 이 세상을 구원하기는 커녕 개선조차도 할 수도 없다.* 이 세상은 신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신의 아들 예수가 재림한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부처나 노자가 다시 태어나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일한 길은 내가 신이 되어서 새 세상을 창조하는 수밖에 없다. 즉, 나를 버려서 무아로 돌아서서 참나가 되는 것이다. 무념, 무심, 무아는 3위일체이며 그것이 곧 참나이다. * 세상을 진보시키려는 어떠한 사상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역사상 성공한 혁명은 없었다. 있었다 해도 그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결국 도루묵이 되었다. 고로 진보사상은 허구이다. 정글을 교통정리하려고 들면 정글은 파괴되고 만다. 세상은 그런 정글이다.

삶과 전력투구

로버트 피어시그는 이렇게 말했다. "It's the sides of the mountain which sustain life, not the top." 직역을 하자면, '삶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산의 비탈이지 산꼭대기가 아니다.' 이역을 하자면, 산을 오르는 것은 산꼭대기가 있어서 오르기는 하지만 산비탈을 오르는 것이 등산이지 헬리곱터를 타고 정상에 오르는 것은 등산이 아니라는 말이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직역을 하자면, '인간은 파괴되어 죽을 수도 있지만 패배할 수는 없다.' 이역을 하자면, 열심히 자신의 삶은 살아온 사람에게는 비록 죽음이 닥쳐도 인생의 패배는 없다는 의미다. 축구공은 이리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