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자식

박희욱 2009. 4. 18. 12:12

어제는 여느날보다 늦게, 저녁 7시 반쯤에 화실을 나섰다.

이미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해월정사를 조금 지나서, 앞에서 꼬마 둘이가 걸어가고 있었다.

조금 의아스러운 것이 그곳에는 꼬마들이 갈곳이 없는 곳이다.

 

"너희들 어딜가니?"

"집에서 쫓겨났어요"

"저녁도 못 먹었어요"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요"

내가 묻지도 않은 대답을 했다.

 

꼬마들은 형제간이었다.

형은 7살이라고 했고, 동생은 5살이었다.

날이 저물어 좀 어두웠지만 얼굴을 보니 귀엽고 똘똘해 보였다.

동생이 반복해서 내게 말했다. "저녁도 못먹었어요. 아무것도 못먹었어요"

형은 약간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스스로 냉정해지려고 하는 것 같았고,

 

동생은 철부지일 수 밖에 없는 나이였다.



"엄마는 어디 있니?"

"화가나서 집에서 문잠그고 자고 있어요. 우리 둘이 나가서 살아래요"

"뭘 잘못했니?"

"컴퓨터가 어쩌고, 저쩌고..."

"아빠는 어디 갔니?"

"일하러 갔어요"

"언제 올거니?"

"내일요"



나는 난감했다.

"어디 갈거니?"

"우리는 광덕어린이집에 다니거든요. 그래서 거기 갈거예요"

그곳은 이미 불이 꺼져 있었다.

나는 말리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달리 할일도, 갈곳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뻔히 알면서 나는 말했다.

"그래 가봐! 혹시 문이 열려 있을지 모르니까"



나는 서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무얼 사먹으라고 돈을 줄 수도 없고, 화실로 데려갈 수도 없고,

 

애들을 놔두고 갈 수도 없고,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아니나 다를까 애들이 문이 잠겼다면서 되돌아왔다.

이걸 어떡해 해야하나. 나는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있어 불러 세워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저씨는 가세요!"

그러고는 그 아주머니는 꼬마들을 앞세워서 집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나는 가슴이 미어졌고, 목이 메였다.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게도 귀여운 꼬마들이!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내 어린시절의 몇번의 경험이 머리에 떠올랐다.

어두운 수영요트장을 지나면서 나는 두번째로 울먹일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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