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함보른 탄광의 박정희 대통령

박희욱 2014. 11. 25. 12:41

오늘 신문의 보도이다.

독일 뒤스부르크시의 옛 탄광촌 함보른에 1964년 12월 10일에 박정희 대통령이 방문했던 일의 기념비문을 세운다고 한다.

그가 방문한 지 꼭 50년만의 일이다.

지난 2010년도에도 박정희의 동상을 세우려고 했으나 비판적인 교민들로 인하여 무산된 적이 있다고 한다.

 

오늘날에 와서 박정희에 대해서는 공7과3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공3과7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박정희가 집권하여서 온 국민이 모두 일어나서 힘차게 일하자는 구호를 외치는 시절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무렵에 대통령선거가 있었고, 그 선거는 박정희와 김대중의 대결이었다.

어느 친구가 나에게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고 물었는데, 나는 박정희가 잘 하고 있지만 민주적인 정권교체를 보고 싶어서 김대중을 찍고 싶다고 대답했었다.

문론 그때 나에게는 선거권이 없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자 박정희는 유신헌법과 계엄령을 선포하고 독재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하였다.

당연히 젊은 혈기로 시위에 나섰고, 재빠르지 못한 운신으로 진압경찰에 잡혀서 부산중부경찰에 끌려간 적도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경찰서장이 나와서 우리를 다독여서 돌려보내 주었다.

나는 박정희의 대갈통에 총알이 박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였었고, 김재규의 총알을 가슴에 받고 그가 쓰러졌을 때 나는 쾌재를 불렀던 사람이다.

 

나는 1990년도에 유럽 배낭여행를 갔었는데, 여행을 떠나면서 서양문명이 동양문명을 앞선 원인을 발견하고 싶었다.

그 궁금증은 첫 도착지 런던에서 쉽게 풀렸다.

트라팔가 광장과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거쳐서 영국국회의사당을 보면서, 그것은 자유경쟁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담박에 알아차렸다.

서양은 합리성에 바탕한 자유경쟁이 가능했고, 반면에 한반도는 내적으로는 유교적 윤리와, 외적으로는 중앙집권적 정치제체에 의해서 자유경쟁이 제한되었던 것이다. 

 

런던을 구경한 다음에, 도버해혐의 터널이 없었던 시절이라 배를 이용하여 해협을 건너서 파리로 갔는데, 나는 유럽의 엄청난 발전상에 경악하고 말았다.

물론, 사전에 유럽의 번영을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그 실상을 보고서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이렇게까지 발전해 있구나!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나!

엄청난 한탄과 함께 자괴감이 밀려 왔다.

 

나는 북받히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파리 상젤리제 거리의 어느 카페에 들어가서 이웃 좌석의 사람들이 볼세라 눈물에 적셔진 눈시울을 닦아야 했다.

아마도 주위 사람들은 마치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나의 태도를 의아스러워 했을 것이다.

그때 문득, 국가의 대통령이라면 민주주의이고 나발이고 간에 우선 경제발전을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박정희에 대한 시각이 변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우선 잘살고 봐야겠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의지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도 국가원수의 일차적 책무는 부국강병이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 대한민국에는 대통령전용기는 물론이고, 재대로 쓸만한 비행기가 없어서 독일에서 제공한 비행기를 타고서 순방길에 올랐다고 한다.

순방의 목적은 독일의 차관을 얻기 위한 것이었고, 박정희 대통령은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임금을 저당 잡히고 차관을 얻었으니

그것은 차관이 아니라 사실상 구걸과 다름 없었다.

한국은 지금의 네팔과 같은 세계 최빈국인데다가 땅덩어리가 남북으로 갈려서 서로 팽팽히 대치하고 있는 나라에 무엇을 믿고 차관을 주겠는가.

산업자본이라고는 전무하다시피하던 시절이다. 내가 초등하교 때는 국민소득이 $80에도 미치지 못했다.

 

칼마르크스 이후 자본주의를 마치 악인 것으로 규정하는 무리가 있지만, 알고보면 자본은 경제의 피와 같아서 경제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자본이 없으면 노동력도, 자원도 무용지물이다. 나는 자본을 단순한 경제적 에너지로 보며,

그것이 마치 공산주의와 같은 하나의 이념으로 보는 것에 이의를 제기한다.

자본주의는 자연스런 현상일 뿐 하나의 이념이 아니며, 다만 공산주의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사용될 수 있을 뿐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함보른 탄광에 위로차 파독광부들을 찾아갔을 때 애국가를 부르면서 모두가 함께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그가 "여러분을 만리타향에서 이렇게 상봉하게 돼 감개무량하다. 조국을 떠나 이역만리 남의 나라 땅 밑에서 얼마나 노고가 많으냐"고 하면서

“여러분, 난 지금 몹시 부끄럽고 가슴 아픕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무엇을 했나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합니다.

…나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우리 후손만큼은 결코 이렇게 타국에 팔려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반드시...... 정말 반드시….” 라고

울먹이다가 끝내 연설을 중단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서독의 하인리히 뤼브케 대통령도 눈물을 흘렸다 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얼마나 울었던지 당시 광부였던 유재천씨는 박 대통령의 눈이 충혈되어서 흰자위가 보이지 않았다고 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은 불쌍한 나라의 불쌍한 대통령이었다고 말했다.

 

탄광방문을 마치고 뷔스부르크의 데마크 철강회사로 가는 의전차량에서도 멈추지 못하는 47세인 박 대통령의 눈물을

70세의 뤼브케 대통령이 손수건으로 직접 눈물을 닦아주면서 박대통령에게

"분단된 두 나라가 합심해서 경제부흥을 하자. 공산주의를 이기는 길은 경제건설뿐이다"라고 위로 했고,

결국 '라인강의 기적'이 '한강의 기적'으로 이어졌는데, 진짜는 '한강의 기적'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독일은 세계최고의 과학기술과 공업기술이

있었지만, 대한민국은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빈털터리 국가였기 때문이다.

 

뤼브케 대통령은 내가 중학시절에 대한민국을 방문했다. 그때 나는 마산에서 뤼브케 대통령을 환영하는 학생대열에 동원이 되었는데 어린 나이였지만

볼멘 불평을 했었다. 그런 일에 학생을 동원하는 일은 지금 같으면 어림없는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그 당시 빈털터리 나라의 대통령이 외국귀빈에게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것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이해가 된다.

뤼브케가 살아 있어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본다면 어떤 표정으로, 무어라고 말할까.

 

오늘날 대한민국이 향유하고 있는, 그리고 내가 그토록 염원했던,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는 결코 반독제투쟁을 하였던 사람들의 공헌이 아니다.

그렇게 믿는다면 그들의 착각이다. 그것은 박정희의 공헌도 아니지만, 박정희가 일구어 놓은 경제력의 결과이다.

내가 결코 믿고싶지 않았던 사실이지만 이제는 나의 기분과는 상관없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배가 고팠던 옛시절에는 눈에 보이는 것은 먹는 것 밖에 없었다. 사실, 누가 무어라고 한다 해도 그것은 그렇게 해야 한다.

인간이 제아무리 잘난 척해도 동물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 사실을 부인한다면 그는 어리석은 동물일 뿐이다.

 

나는 박정희가 공7과3인지, 아니면 공3과7인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분명한 것은 박정희 대신에 그 어느 누구도 단상에 올라서 한반도에서의 경제기적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 이 보도를 접하고 24년전에 상젤리제 거리에서 울먹였던 그 감동으로 다시 한번 솟구치는, 북받히는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다.

그때 내가 상젤리제 거리의 카페에 앉아 있을 수 있었던 것도 박정희 대통령의 덕분이었다.

뒤늦게나마 그의 명복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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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당시에는 세계의 군사 쿠데타를 염려했던 미국은 한국에 대한 원조를 중단했고,

  비참한 나라 한국에는 아무 나라도 지원해줄 나라가 없었다.

 

*서독정부가 제공한 비행기는 정기항로에 취항한 비행기라서 뉴델리, 카라치, 카이로, 로마, 프랑크푸르트, 등을 거쳐서

 28시간만에 서독의 수도 본에 도착하였으니 일국의 대통령으로서는 차마 견디기 어려운 자괴감을 느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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