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사랑과 욕망

박희욱 2013. 11. 17. 22:02

 

니체(1844년~1900년)

 

누군가는 인간의 욕구를 22가지로 분류하였다.

그런 수많은 욕구를 두가지로 분류한다면 생리적 욕구와 사회적 욕구로 대별할 수 있다.

생리적 욕구는 모든 생명체에 필요한 욕구이므로 논외로 치고, 그 사회적 욕구(social needs)를 나는 욕망(desire)이라고 부른다.

 

일찌기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정의하였다.

인간은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자연 상태에서 홀로는 살지 못한다.

거의 모든 사람은 사회 속에서 타인과 더불어 살려고 하고, 소외당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프로이트(1856년~1939년)는 삶의 근원적 에너지를 성에너지(리비도)로 보았는데,

상당한 일리가 있다고 보지만 나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 이와는 달리,

독일의 철학자 니체(1844년~1900년)는 스스로 강해지고 타인을 정복하려는 의지 즉,

'권력 의지(will to power)'가 인간존재의 가장 심오한 본질이며, 삶의 근본 충동이라 하였다.

 

니체의 주장이 옳다고 본다면, 그가 말하는 권력(power)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내가 보기에 그것은 정치적 권력(power of authority), 금력( power of wealth), 체력(phisical power), 매력(bewitching power), 지력(intellectural power) 등

타인의 의지를 제압하거나 제어할 수 있는 모든 힘 즉, 능력이다.

인간은 이러한 능력을 확보하려고 삶을 소진하는것이 사실이고, 그것을 니체는 권력 의지(또는 권력에의 의지)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권력 의지를 사용해서 타인의 의지를 제어하려는 종국적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에 있어서 우위적 위치를 확보함으로써 그 관계를 자신의 뜻대로 주도적으로 제어하겠다는 의도이다.

그 관계는 달리 말하면 홀로 살 수 없는 인간들의 '사랑의 관계'이다.

결국 권력의지는 사회속(가족도 최소 단위의 사회다)에서 사랑을 확보함으로써 어떠한 경우에도 소외되지 않겠다는 의지이다.

따라서 나는 니체의 '권력 의지'를 '사랑 의지(will to love)'로 대체하고 싶다.

니체는 권력 의지를 인간을 넘어서 우주적인 목적으로 보았지만 나는 권력은 수단이고 사랑이 목적이라고 본다.

권력을 가짐으로써 타인으로부터 소외되지 않고 사랑을 받고 또 사랑하고싶어 하기 때문이다.

 

앞서 나는 사회적 욕구가 바로 욕망이라고 했는데, 욕망은 타인을 사랑하고, 타인으로부터 사랑받고싶은 욕구가 그 근원이다.

다시 말하면 욕망 즉, 사랑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니체가 말한 권력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실재로 사람들은 가정에서든지, 사회에서든지, 이성간이든지, 동성간이든지, 가릴 것 없이 언제나 사랑 타령이며,

그 사랑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허버트 스펜서는 사람은 삶이 무서워서 사회를 만들었고, 죽음이 무서워서 종교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자연상태에서는 삶이 무서워서 만들었던 그 사회가 현대에 들어와서는 거꾸로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상황으로 변해버렸다.

권력을 유지함으로써 사랑을 확보하려고 투쟁을 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삶이 파괴되고 마는 것이다.

사람은 예외없이 권력에서 밀려나면 사랑에서도 밀려나고 만다.

여러가지 권력 중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면 아무도, 심지어 가족조차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즉 쇠외되는 것이다.

 

나는 네팔의 시골 마을에서 이른 아침마다 개떼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그놈들은 마을 길거리를 서로 물어 뜯고 싸우면서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서열싸움 즉, 권력싸움을 하는 것이었다.

그놈들 중에는 주둥아리나 귀를 물어뜯겨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굳이 기를 쓰고 따라다니며 무리에서 이탈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무척 기이하게 보이기도 하고 바보스럽게 보이기도 했다.

야생 들개는 자연상태에서는 집단을 이루지 않고 홀로 떨어져서는 살아남을 수 없었고,

그런 들개가 인간의 가축이 되고 나서도 옛 습성이 그대로 남아서 집단으로 몰려다니면서 서열 싸움을 아직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 또한 홀로 살 수 없어 더불어 살기 위하여 니체가 말하는 권력 의지를 불태우는 것이다.

결국 사람은 사랑을 얻기 위하여 권력 투쟁을 계속하는 모순에 빠지고 말았다.

 

니체는 그의 저작 '권력 의지(will to power)'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리에서 벗어나서 나만의 길을 가라.

인생을 쉽게, 그리고 안락하게보내고 싶은가?

그렇다면 무리 짓지 않고서는 한시도 견디지못하는 사람들 속에 섞여 있으면 된다.
언제나 군중과 함께 있으면서 끝내 자신이라는 존재를 잊고 살아가면 된다.

 
과연 무리 속 즉, 사회 속에 있으면 쉽고 안락한가? 아니다!

개떼 속에 함께 끼어다니면서 서열 싸움을 벌이면 안락한가? 아니다!

인간 사회 속에서 권력 의지를 불태우면 안락한가? 아니다!

 

권력을 확보함으로써 자기주도적인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려는 의지가 바로 '사랑 의지'이다.

결론적으로 모든 욕망을 끊기 위해서는 욕망의 근원인 '사랑 의지'를 버려야만 한다.

그래서 니체는 무리에서 벗어나서 자신만의 길을 가라고 한 것이다.

말하자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럼으로써 모든 욕망은 저절로 떨어져 나가게 된다.

자연에서 홀로 살아야  한다면 무슨 욕망이 남을 것인가, 아무런 욕망이 남지 않을 것이다.

 

아담과 이브는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는 땅에서 둘이서 홀로 살았다.

홀로 살았던 그들에게는 '사랑 의지'도, '권력 의지'도 불필요하였다.

그런 의지가 없는 텅빈 그곳이 바로 낙원이었다, 달리 낙원이 없다.

 

모든 욕망이 사라진 사람 즉, 낙원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향기가 묻어난다.

그 향기가 바로 예수가 말하는 온유한 사랑이고, 부처가 말한 자비이다.

그 사랑은 사회적인 관계의 사랑이 아닌 절대적 사랑이며, 그것이 바로 신의 사랑이다.

그때는 自와 他가 사라진 상태이며, 그런 사람은 사회 속에서도 홀로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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