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Muir Trail

Epilogue

박희욱 2020. 7. 17. 01:48

JMT의 아름다움은 예상대로였다.

나는 이미 많은 사진을 보았고, 더구나 들머리 요세미티는 2번이나 방문을 했으며,

날머리 휘트니포털에서 휘트니산 봉우리를 환상적인 기분으로 본 적이 있다.

JMT는 흔히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과 캐나다의 웨스타코스트 트레일과 함께 세계3대 트레일로 불리운다.

 

나는 이 아름다운 트레일을 즐기려고 Lyell Canyon 트레일헤드에서 Whitney Portal 트레일헤드까지

표준적인 일정이 19일 정도인 것을 22일간으로 넉넉히 잡았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는데

JMT가 그렇게 기복이 심한 트레일이라고는 상상을 못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아름다운 호수길의 사진들만 보았기 때문에 심한 기복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표준적인 걸음걸이라면 17.0 km/day 이상의 속도로  걸어야 하는데 나는 14.4km/day 정도의 속도로 걸었다.

그것도 쉼없이 걸었던 것이다.

 

동작이 빠른 사람이라면 오전 8시 쯤에 출발할 수 있을 것이나 나는 근 9시가 가까이 되어서 출발할 수 있었다.

나는 쉼없이 걸어 오후 4~5시 경에 텐트를 쳤다.

더 이상 전진했다가는 캠프장을 잡지 못해서 노영을 할 수도 있다.

그 시간에 트레킹을 중단하고 텐트를 친다면 휴식시간이 있을 것이라고 여겨질 것이지만 그렇지 못하다.

저녁식사를 하고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는데 2~3시간이 소요되고 나면 피곤해서 곧바로 취침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시간에 여유가 있다 해도 춥거나 엄청난 모기떼의 공격에 편히 앉아서 휴식을 취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져서 텐트막에 얼음이 얼었던 날도 있었다.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모기떼의 극성을 상상하지 못한다.

내가 경험한 알래스카의 엄청난 모기떼를 훨씬 능가한다.

많은 경우 밤낮의 구분도 없이 공습을 감행해서 모기망을 써고서 트레킹을 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그 모기망이 깝깝하고 더워서 착욯하지 못하고,

마치 농아들이 수화를 하듯이 얼굴에 달겨드는 모기떼를 끊임없이 쫓으면서 걸었던 적이 많았다.

 

나는 VVR을 출발해서 긴 오르막을 오르면서 JMT 완주를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다.

결정적인 것은 제2보급지 Muir Trail Ranch에서 제3보급지 Onion Valley까지의 8일간의 식품중량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계획할 때부터 자신이 없었지만 MTR까지 오면 백팩의 중량에 적응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갸날픈 기대를 했지만 18kg의 중량은 나로서는 무리였다.

 

우려했던 오른쪽 다리의 무릎과 발은 괜찮았다. 무척 조심 조심 걸었던 것이 주효했고

무릅보호대의 효과도 보았을 수도 있다. 첫날은 미소한 통증의 있었으나 오히려 갈수록 나아졌다.

그러나 18kg의 백팩을 지고서 완주를 강행했다면 다리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을지 알 수 없다.

나의 백팩 한계중량은 역시 15~16kg이다.

동행한 이원기 군은 양쪽 발에 5개씩 완두콩만한 물집이 생겼다.

특이한 것은 뒷꿈치에도 나란히 1개씩 물집이 발생한 것이다.

 

JMT를 걸었던 사람들 중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행복한 길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 있어도 행복한 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내게는 마치 625피난민생활이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딱이다. 정말 너무 힘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트레일은 쿰부히말 3패스이다. JMT는 고도 5550m를 올라야 하는 그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내가 자전거를 가지고 해발 5416m를 올라야 했던 안나푸르나 서킷보다 더 힘들었다.

 

옛부터 호사다마라 했던가. 참으로 아름다운 트레일이고 참으로 힘든 트레일이었다.

안타깝게도 JMT는 천천히 즐기면서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천천히 걸으면 그만큼 식품중량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내가 식품을 제외한 백팩의 중량이 11kg 남짓이었는데 Logan 같은 사람은 불과 5kg밖에 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Logan

춥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덥다고 했다.

 

 

이렇게 빈약한 장비로 PCT를 한다고 했다. 배낭도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비범한 요기였다.

 

나의 여행은 언제나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즐기는 것이었지 성취감을 위한 적은 없었다.

JMT는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트레일이었지만 그것을 즐기기에는 너무 힘든 트레일이었다.

어떤 사람이 JMT를 한 번쯤은 가볼만하다고 해서 내심으로 불쾌했었는데 이제는 이해할 것 같다.

그도 너무 힘들었던 것이다.

 

혹자는 JMT는 빛의 길이며, 물의 길이라고 하는데 맞는 말이다.

내가 덧붙이자면 JMT는 호수의 길이고, 메도우의길이고, 통나무의 길이며, 모기떼의 길이다.

그리고 천상의 길임과 동시에 고행의 길이었다.

모든 트레커들이 나를 앞질러 나아갔는데 그만큼 JMT를 즐기면서 걷는 자는 없다.

어찌 JMT뿐이겠는가, 삶을 즐기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즐기면서 살아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존재는 그런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비록 중간쯤에서 JMT를 탈출하였지만 이번 트레킹이 실패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반쪽의 성공이었다고 자평한다.

이번 트레킹으로 나의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를 확장시켰기 때문이다.

만용인가는 몰라도 산소통 매고 셀파의 도움으로 빈몸으로 할 수 있다면

에베레스트 정상에도 설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나에게 굳이 삶의 의미를 묻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한계의 확장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성장과 성숙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것이 중단 되는 날, 그날이 내가 죽어야 할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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