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가는 길 881

영혼과 마음과 사회

마음은 사회의 일부다.그것은 존재의 일분가 아니다.따라서 마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사회가 필요하다.더욱 확립된 사회에서는 더욱 능란하게 자란다. 내가 비인간으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내가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지 못하기 때문이다.내가 희구했던 비인간은 바로 무심이었다.사회는 나의 존재에 마음을 끌어들이는 관계수로이다.아니다, 사회가 곧 마음이다.홀로 존재할 때 마음은 존재할 수없다.성당의 첨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실은 반드시 혼자서 올라가게 되어 있다.마음을 가지고서는 영혼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그대가 무심이 될 때, 그 때가 바로 영혼이 되는 순간이다.

나와 우주

그대는 한낱 작은 개체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다.그대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거대한 우주이다.우주는 시작도 끝도 모두 스스로 내포한다. 그렇드시그대는 그대의 탄생조차도, 죽음조차도 내포하는 거대한 존재다. 그 존재를 일러 순수의식(심리학), 또는 영혼(기독교)이라 한다.그 영혼을 신이라 불러도 상관없다.이른바, 성부, 성자, 성령만 삼위일체(trinitas)가 아니다.그대 또한 신과 영혼과 함께 삼위일체다.스스로 만든 굴레를 벗어던지면, 한없는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된다.

사랑과 침묵

We Don’t Need to Seek Love. We Just Have to Stop Resisting It.  그 누구든지 간에 사랑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그 사람을 경계하라.비록 그가 예수라 할지라도 예외가 아니다.그런 사람은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다.사랑이란 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나 사랑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을 찾는 것은 거지의 구걸행위이며,그런 거지에게 동냥을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굳이 말하자면 사랑이란 텅빈 충만이다. 고로'아무것도 없슴'은 설명할 수 없고, '가득 참'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사랑을 말하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사랑이 없는 사람이다.신은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신은 침묵이기 때문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아브라삭스

선과 악을 초월한 신, 아브라삭스는 무념무심의 신이다.아브라삭스는 인간의 언어로써 말을 하지 않으며,오로지 침묵으로써 말하는 신이다.인간의 언어는 선과 악이라는 이원성에 기초한 저급한 언어다.낙원에서 선악과를 금단의 열매로 지정한 여호와도 본래는 아브라삭스였다.인간들이 이러저러한 언어로써 그를 타락시켰다.그것은 낙원에서 추방당한 인간들의 보복이었다.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

인간이 모체의 자궁속에서 발생할 때 어류, 양서류, 파충류, 포유류의 모습을 거쳐서비로소 인간으로 출생한다. 이것을 두고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고 한다. 인간은 태어나서 젖을 먹고 자란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어류의 시기다.다음에는 이유식을 먹고 자란다, 물에서 뭍으로 들락거리는  양서류의 단계다.다음에는 밥을 먹으면서 학교에 다닌다. 들판에서 기어다니는 파충류의 단계다.학교를 마치면 생업을 하면서 살아간다. 힘들게 산을 오르는 포유류의 단계다.인간은 보통 포유류의 단계가 끝내고나면 노후를 보내다가 생의 종말을 맞이한다.간혹 기어오른 산의 정상에서 지나가는 구름위에 올라타는 포유류도 있다.비로소 포유류에서 인간이 된 것이다. 그런 인간들 중에서도 이슥한 밤이 되면타고 있던 구름을 버리고 아스라한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