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 15

무아와 텅빔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자신의 자존감을 위해서는 많이 알아야 한다.아는 것이 많을수록 경쟁에서 유리하므로금력과 권력과 명예를 확보할 수 있다.그런것을 많이 확보하면 할수록 我相이 커지고 깊어진다. 我相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것은 자신이 지고 있는 지게에 짐이 늘어나는 꼴이다.결국, 我相이 자신의 자유를 잠식하게 된다.자유롭고 싶다면 我相을 버리고 無我로 가야 한다.無我는 無念이며, 無心이며, 텅빔이다.그 텅빔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인간은 나무위의 금단의 열매, 즉 지식을 따먹음으로써 我相이 발생했다.그 我相으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이 생기고, 그래서 앞을 가리게 되어서낙원에서 추방당한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는 앞을 가리지 않는다. 비록,금력도, 권력도, 명예도 없을지라도.

하나님과 무아

인류의 조상은 본래 나무위에서 살았던 원숭이었다.그런데 기후가 변하여 나무가 사라지고 스텝초원으로 변해버렸다.그리하여 인류의 조상은 나무위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나무위에서 내려오고 보니 뿔도 없고, 발톱도 없고, 이빨도 작고, 힘도 약한인류의 조상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두뇌, 즉 사고력을 발달시켜서창을 들고서 뭇 동물들에게 대적하는 길밖에 없었다. 그런데 생명보존을 위해서사고력을 발달시킨 이 사고력이 지나치게 발달한 나머지 삶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다.이것을 성경에서는 금단의 열매를 따먹은 것으로 그려내고 있다. 생명보존을 위해서는 사고력이 필요하지만 진정한 삶에서는사고, 즉 생각은 고통의 원인이 된다.성경에서는 사고가 사라진 상태를 일러 영혼이라 하고,불경에서는 이것을 무념, 즉 무심..

참나

세상이 나로부터 사라지면 나 또한 사라진다.세상과 나는 둘이 아니다, 不二이다. 고로범아일여이다.세상과 나가 사라진 텅빈 그곳을 일러 무아라 한다.그 텅빈 곳을 참나라 해도 좋고, 영혼이라 해도 좋고, 신이라 해도 좋다. 산속에 산다고 해서 참나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저젓거리에 산다고 해서 참나가 될 수없는 것도 아니다.연닢위의 물방울처럼 세상에 살아도 세상에 물들지 마라. 그러나 사람들은 세상을 버리면 자신의 존재가 사라질까 봐 두려워한다.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상실하는 것이 두려워서 세상에 집착한다.

단상 2024.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