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좌파

박희욱 2022. 3. 14. 15:44

가령,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 100명을 모아놓고서

자신이 우파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했을 때,

100명 중에 대충 30명이 손을 들었다 치자. 그런 다음,

자신이 좌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손을 들어 보라고 한다면 과연 몇명이나 손을 들까?

모르긴 해도, 아무리 많이 보아도 10명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왜일까?

 

좌파가 많지 않아서일까? 아니다.

좌파들은 기껏해야 자신은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라고 답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들은 자신을 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자기자신을 잘 모르기도 하려니와

마음 깊숙이 좌파인 것에 대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탓에 부정하고 싶은 것이다.

그가 아무리 똑똑한 좌파라해도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비록 서울대학을 졸업했다 할지라도 예외가 아니다. 이를테면

촉새 유시민이도 마음의 기저에는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그가 그렇게 떠버리는 것도 바로 컴플렉스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상판을 보거나 목청 톤을 들어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며,

시민이는 대개의 좌파가 그렇드시 남의 말은 듣는 척하면서

말할 것을 생각하거나 자기차례를 기다리는 스피커방송형 인간이다.

 

하버드박사는 다를까? 그럴리가 없다.

하버드에서 동양학박사를 따먹었다는 용옥이를 보면 안다.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비벼서 이도저도 아닌 비빔밥 개똥철학이 되어서 그런지 맛이 갔다.

비유를 하자면, 용옥이는 마치 눈을 감고 달리는 사막의 타조와 같다.

자신은 자신만만하게 힘차게 내달리지만 그 모습이 가관이다, 개그맨보다 낫다.

그것도 모르고 돌아이를 추종하는 사람은 맛도 모르는 어린 좌파들 뿐이다. 어쩌다가

용옥이의 책을 한두권 쯤은 읽어볼 수 있겠지만 서너 권 이상을 읽었다면 지능이 의심된다.

 

그들은 열심히 떠들어댈 때, 약간의 우월감을 느낌으로써 그 컴플렉스를 잠시나마 잊는다.

돌아이 용옥이가 온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는 것처럼 아무리 으슥대도

그는 지식이 무지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물일 뿐이다.

그렇게 우월감과 열등감은 마차의 두 바퀴처럼 함께 굴러가는 법이다.

 

이를테면, 미국의 흑인들은 대체로 좌파를 지지한다. 왜일까?

가난해서일까? 그렇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에 앞서

심리적으로 컴플렉스가 있기 때문이며, 가난하다는 것도 그들에게는 컴플렉스다.

그들은 가진자들을 향해서 쉽사리 손가락질하지만,

실재로는 남의 눈길이 없으면 길거리에 떨어진 동전조차 집어들 사람들이다.

좌파들이 그토록 평등에 목말라 하는 것은 컴플렉스, 즉 열등의식이 스며져 있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우월한 사람들을 못 참아 하는 것이다.

 

주변에서 정치사회 문제에 관하여 떠들어 대는 사람들을 잘 살펴보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좌파라고 단정해도 거의 틀림이 없다.

실재로 내가 자랄 때는 말이 많은 사람에게는 너 빨갱이냐고 하면서 힐난하곤 했다.

좌파들은 세상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에 침묵을 지키기가 어렵다.

왜 분명해 보일까? 아는 것이 많아서일까? 몇가지 이유가 있지만,

중 하나는 세상을 좁은 관경으로써 보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우파들은

세상은 쉽사리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비교적 입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벙어리가 아닌 이상 침묵을 지키는 좌파는 없다. 

 

삶과 세상은 알면 알수록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종래에는 침묵으로 가게 되어 있다.

옛부터 말많은 놈이 싱겁다고 했다, 맹물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한 소크라테스는 대화에서 문답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말이 많은 철학자일수록 그 누구를 막론하고 가짜다. 

반대로, 침묵을 가르치는 철학자만이 진짜다.

그때 그 철학자는 이미 철학자가 아니다, 그가 바로 침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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