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안중근

박희욱 2023. 9. 11. 13:53
외국인기록을 보면,
안중근의 아버지가 중국인 의사로부터 구타를 당하였다.
이에 분개한 안중근은 그 중국인 의사를 죽도록 처발랐다.
그 의사는 청국에 이 사실을 호소했고, 청나라는 고종에게 안중근을 조사하라고 명령하였다.
이에 조선정부는 안중근을 구속하였고, 그는 서울로 압송당하다가 탈출하여 만주로 달아났다.
 
만주로 달아난 안중근은 살아갈 길이 독립운동(테러활동)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독립운동이랍시고 몇몇 일본수비대를 습격하였으나 실패하고,
동포들을 괴롭혀서 호구를 해결하던 안중근은 종래에는 동포들로부터도 외면 받았다.
더 이상 살길도 없고, 고국으로 돌아갈 길도 없었던 안중근은 절망하였다.
그래서 남은 길은 떳떳이 자살하는 길밖에 없었고, 그것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성공했고 그는 한국인들의 영웅이 되었다.
 
이완용 선생은 안중근에 의한 친한파 이토 히로부미의 살해를 심히 개탄하였다.
왜냐하면, 이것은 러일전쟁으로 인하여 제정에 압박을 받고 있어서 미적거리고 있던
일제에 의한 한일합방을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왔고,
초대 총독을 안중근의 이토 암살로 말미암아 조선인에 대해서 악감정을 가지고 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맡게 되고,  결국 그에 의한 무단정치를 초래하였다.
그래서 외국인들은 말했다.
조선인 중에서 조선에 가장 큰 해를 끼친 자는 안중근이라고.
 
사실, 젊은 처를 과부로 만들고, 어린 자식을 버린 죄는 어떤 이유로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그가 주장한 동양평화론도 그렇다.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해서 어떻게 동양평화에 기여한단 말인가!
그는 총리를 4번이나 역임한 일본의 영웅이었고, 그만큼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인물이었다.
동양평화론은 마치 서양제국주의가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데
어린아이가 바닷가에서 모래장난 하는 격이었다.
 
안중근!
그는 살인을 한 막장 테러리스트에 불과하다.
사실, 1894년에 동학란이 발발하자 불과 16세의 나이로
부친과 함께 양반들의 민병대에 가담하여 동학군과 전투를 치루었다.
그의 동양평화론은 박정희를 살해 해놓고 그것이
민주화운동이었다고 변명하는 김재규와 다를 바 없는 억지다.
그가 31세에 죽기 전까지의 전력을 보면 평화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오히려 적의에 가득찬 인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겠다고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고서는
사형을 당하기 전에 자신은 그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것이 조선의 독립을 위한 살인이었나?
 
 
후기
안중근의 아들은 아버지의 일을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에게 사과를 하였다.
이에 격분한 백범 김구는 그 아들을 암살하려고 했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그의 사과는 일제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암살은 김구의 특기였고, 김구 또한 동학란에 18세의 나이로 참전했었다.
그러니까, 동학란 때는 김구와 안중근은 서로 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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