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127

탄생과 죽음

나는 1953년 11월 16일 새벽에 태어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에게 세상이 서서히 다가왔을 뿐 그렇듯이 언젠가 세상은 나로부터 서서히 멀이지기 시작할 것이며, 어쩌면 갑자기 사라질지도 모른다 영원한 나는 언제나 여기 이렇게 존재한다 그 나에게는 탄생도 없고 죽음도 없다 다이아몬드 같은 불변의 나는 영원히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그 지금 여기가 영원이다

단상 2022.03.11

신과 시공간

신이 존재함으로써 우주가 존재하는가? 아니다. 우주가 존재함으로써 신이라는 개념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그러면, 시공간(Time-Space)이 존재함으로써 물질과 에너지가 존재하는가? 아니다. 물질과 에너지가 존재함으로써 시공간이라는 개념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이나 시공간이나 모두 비존재의 존재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단상 2022.02.03

천국

나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모른다 그러나 불행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안다 그것은 매사에 있어서 미루지 말고 그때 그때 종결지어버리는 것이다 그 종결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끝난 일을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어떤 일을 끝내고 뒤돌아보지 않는다면 그대는 텅 비게 될 것이다 그 텅빔이 바로 천국이다 지나간 일을 뒤돌아보는 것, 그것이 곧 소돔과 고모라의 저주이다 지난일을 뒤돌아보고서 소금기둥이 되어버린 롯의 아내처럼 되지 마라

단상 2021.09.29

윤리도덕

한국인들은 스스로를 동방예의지국이라 일컷습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그 윤리도덕을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갑옷으로 이용하거나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칼로서 이용합니다. 누구보다도 윤리도덕을 잘 이용하는 자들은 바로 정치인들입니다. 한국인만큼 윤리도덕을 강조하는 나라가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들은 윤리도덕의 이용가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그 이용가치란 공격과 방어를 위한 무기로서입니다. 그러나 윤리도덕의 진정한 가치, 즉 사회의 윤활유로서의 이용가치는 잘 모릅니다. 진정으로 윤리도덕적인 사람은 윤리도덕적 관념이 없습니다.

단상 2021.09.23

행복과 인생

어느 볼리비아인이 말했습니다. "때로는 우울함도 좋습니다. 행복은 지나치게 과대평가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꼭 40년전에 행복을 포기했습니다. 행복은 추구해봐야 도달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도 아니거니와, 그 추구가 나의 자유를 구속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달콤한 아이스크림이나 솜사탕맛을 즐기겠다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향기로운 커피맛이나, 알싸한 맥주는 달콤함이 아니라 오히려 쓴맛입니다. 좋은 와인도 결코 달콤하거나 새콤한 맛이 아닙니다. 인생도 그러합니다. 때로는 괴로움도, 슬픔도, 외로움도,우울함도 인생을 풍부하게 만드는 훌륭한 재료입니다.

단상 2021.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