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항해 <긴 항해> 나는 내 스스로 끊임없이 노를 저어서 나의 의지대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여겼더라 이제 힘들었던 노를 뱃전에 올려 놓고 사방을 둘러보니 어느듯 긴 강의 하류로 떠내려와 있더라 나는 그동안 하릴 없이 힘들게 노를 젖고 있었던 것이더라 이제 머지 않아 나는.. 끄적거림 2015.08.01
빈 쟁반 <빈 쟁반> 뒷뜰에 놓인 빈 쟁반 간밤에 내린 이슬이 쟁반에 고이면, 그것은 나의 몸 뒷뜰 대나무가 흔들리고 바람이 일어나 수면이 일렁이면, 그것은 나의 마음 일렁이는 수면에 하늘이 비치고 구름이 비치면, 그것은 나의 세상 나의 몸, 나의 마음, 나의 세상은 서로 별개가 아닌 3위.. 끄적거림 2015.06.07
외솔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면 영축산 어느 벼랑에 틀어박힌 작은 외솔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미처 몰랐다 지금 즉시 그런 외솔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끄적거림 2013.11.08
중광 스님 중광 스님은 세상을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괜히 왔다 간다 내가 태어날 때 울음을 터뜨린 것은 신의 장난에 화가 나서였다 나는 다시는 테어나지 않을 것이다 윤회가 끝난 것이다 끄적거림 2013.11.08
범아일여 나는 거대한 반얀나무 가지끝의 작은 잎새 하나 생긴 모습 그대로 나무가지 끝에 매달려 있다가 때가 되면, 일렁이는 바람결을 따라서 땅으로 되돌아가리라 나에게는 모든 것이 떠나갔다 사랑도 이별하고, 행복도 이별하고, 깨달음도 이별하고, 마지막에는 이별하는 나와도 이별하고 나는 돌아가리라 그곳이 어디든지 상관할 바가 아니나 바람속의 낙옆처럼 구르는 데로 굴러서 되돌아, 또다시 반얀나무가 되리니 그것이 범아일여라 끄적거림 2012.09.12
강나루에서 긴 나그네길 홀로 돌아 강나루에 이르고 보니 외로운 나룻배 흐르는 물결 위에 하릴없이 흔들리고 물새들이 놀다간 발자국만 물끄러미 나를 기다리네 고즈넉한 모래밭에 홀로 앉아 따가운 오뉴월 햇살 받는데 게으른 사공은 언제사 돌아와서 저 멀리 강 언덕을 건네주려 하느뇨 끄적거림 2012.06.09
진리와 빛 나는 진리가 빛일 것이라고 여겼다 진리가 내가 걸어야 할 길을 밝혀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은 것은, 환한 빛으로 가득한 더넓은 길을 걸어가고 싶은 욕망에서였다 그러나 알고 보니, 진리는 걸어가야 할 길이 없슴을 알려주는 빛이었다 아니다. 그것은 걸어가야 할 길을.. 끄적거림 2012.04.14
어느 여름날 밤 문득, 지나간 옛 여름날 밤이 생각난다 모두가 배고팠던 시절 마당바닥 멍석위에 둘러앉아 모깃불 연기 속에서, 잿피가루 미꾸라지 국물에 밥을 말아서 두 사발을 훌쩍 비우고도 조금 더 먹고 어스름이 깃드는 시냇가 방천에 모여 앉아 설렁대는 밤바람 가슴 가득 안으며, 하늘 촘촘히 빛.. 끄적거림 2011.07.13
이메일 안녕하십니까, 최선생님! 메일 확인이 늦어 답장이 늦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슬렁슬렁 지나가더니 벌써 송년의 달이 깊어가고 있습니다만, 제가 참석할 송년회의 자리는 없군요. 신문과 TV와 단절한지도 어언 10여년이 흘렀고, 어떠한 모임도 갖고 있지 않는 저는 사회에 살면서도 사회와 .. 끄적거림 2010.12.30